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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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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May 31. 2020

새로운 손님과 시작

#004 네번째 이야기

집시의 집에 온지 벌써 열흘 째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느끼지 못한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하늘 가득 별들이 총총히 맺혔다가 또 그 다음날 해가 뜬다. 몇 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몇 일까지 마감일이기에 밤을 새야 한다던가 하는 일 없이 무던하게 시간이 흘러간다. 삶이 단순화 되어져 간다고나 할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새소리와 저 멀리서 들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새벽의 맑은 공기를 가르며 오늘 낮에도 해가 쨍쨍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부터 속삭여 주듯,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고, 맨발에 촉촉하게 느껴지는 아침 이슬들이 하루의 시작을 속삭여준다.  


이른 아침 집시의 집 문을 열면 나를 반기는 풍경, Odemira, Portugal


친구 Massi의 도움으로 카라반과 연결하여 텐트를 설치해서 집시의 집은 2배로 늘어났고, 바닥에 팔랫을 깔아 나무 바닥을 깔았다. Tomas의 도움을 받아 태양 광판을 설치하여 이틀 만에 우리는 태양이 주는 고마운 에너지로 밤에 전깃불을 밝히고, 음악을 틀 수 있게 되었다. 카라반에는 여기저기 수납 공간이 많아,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짐들이 이 집시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침실에는 2층 침대를 설치하여 첫째 아들 율이가 2층을 사용하고, 나머지 가족들이 아래 공간의 더블 침대에서 넉넉하게 잘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잠자는 공간을 한 곳으로 만듦으로써, 서재 및 작업공간으로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예전에 집에서 쓰던 몇 개의 책장을 가져와 책들과 아이들의 재료들 및 테이블 게임들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또한, 나무 판자를 잘라 연결하여 나만을 위한 작은 작업 테이블을 마련하였다. 이 조그만 테이블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옷을 만들겠지?


집시의 집에 새로 마련한 나의 작은 작업공간


커뮤니티란 의미가 시간과 함께 조금씩 더 서로를 결속 시켜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며 만나는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에게 인사를 주고 받는다. 그냥 눈짓이나 목례 인사가 아니라, 두 손을 활짝 펴고 서로의 가슴을 맞대어 끌어 안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밤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친구들과 노느라 바쁘다. 서로 조를 짜서 공동 텃밭을 관리하고, 일주일에도 한 두번씩 모두가 동그랗게 모여 앉아 여러가지 일들을 논의하고 공동체적 삶과 독립적인 자유를 존중하는 조율된 선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음식을 나누며 시간과 삶을 공유한다. 흙으로 고쳐서 만든 오븐에 나무를 지펴 피자 파티를 하기도 하고, 미쳐 마무리가 덜 된 집시의 집 베란다에서 집들이 파티를 열게 되었다. 제목은 본의 아니게, 우리의 “세번째로 태어나게  아이를 축하하는 파티” 가 되었다. 미쳐 예상치 못했었던 셋째!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이다! 남편과 나는 어리둥절 했었고, 특히 이미 50이 넘은 나의 이탈리안 남편은 너무 늦은 시기에 맞이하게 되는 셋째가 충격이었다고 하면 맞는 표현 이었을게다. 그런 남편에게 이미 아이가 4명인 Ines와 Jonney 부부는 뜨거운 열광과 축하 세례를 뿌렸고, 다른 식구들 모두의 축하 속에서 조금씩 남편은 평정을 얻었다. 집시의 집들이 파티는 조촐하면서도 나름 로맨틱했다. 우리의 가족과 다름없는 Massi가 피운 모닷불에 아이들은 둘러 앉아서 토마토 파스타를 먹고, 팝콘을 구워냈다. 어른들은 집시의 집 베란다에 있는 작은 테이불에 두런두런 붙어 앉아서 남편 Giorgio가 만든 야채 파스타와 Daniela가 가져온 브로콜리 파스타, Jonney가 가져온 축하 메세지 "Auguri"가 적혀진 또르띨야Tortilla(계란과 감자를 베이스로 한 스페인 전통 음식)와 남편의 레스토랑에서 가지고 온 와인들을 왕창 풀어냈다. 밤이 깊어갈수록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도 깊어져 갔다.  



이곳에 와서 가장 커다란 변화 중 하나는 식사 시간과 간식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당최 아이들을 집에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수없이 많은 놀이들을 구상해가며 실험해보고 시도해보고, 아이들끼리 흥정도 하며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발견해 나간다. 그렇기에 각기 가족들은 피크닉이나 파티 때를 제외하고서는 되도록이면 식사는 각자 가족끼리 하는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과 차분히 식사하며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할 수 있으니까. 또한, 간식 시간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이 위치한 가까운 곳에 있는 집에서 아이들은 간식 시간을 갖는다. 누군가가 정한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은 우리 커뮤니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면서 모든 집들이 자신의 집인 것처럼 서스름 없이 물이나 간식들을 제공받는다. 한참을 뛰어 놀다 허기진 배를 간식들로 채우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우리가 선택한 이 길이 옳았다고 속삭여본다.  


간식으로 팬케이크를 나눠먹는 아이들


이곳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의도해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 짜여진 삶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고 이상하는 세상을 조금씩 함께 일구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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