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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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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n 01. 2020

스스로 자라나는 아이들

#005 다섯 번째 이야기

아직 집시의 집이 정돈 되기도 전에, 나는 아이들을 위한 공동 공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아직도 예전에 누군가가 남겨둔 물건들이 반 이상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아이들은 이를 개의치 않고 가지고 있는 공간을 100% 활용해서 이것저것 실험도 해보고 놀이들을 만들기도 하고, 책들을 보기도 한다. 그래도 조금 더 실용적이고 적절하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이 공간을 바꾸기로 했고, 대대적인 청소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 이 공간은 지붕도 군데군데 뚫려서 비가 오면, 물이 새어 들어오고, 지붕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도 모를 페허 같은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염려되어 Tomas와 Grant가 지붕 보수 작업에 들어갔고, 이제는 비가 와도 끄떡이 없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또한, Daniela와 함께 필요한 물건들과 필요 없는 물건들을 먼저 분류하고 모든 먼지들을 제거하기 위해 대대적인 물청소를 감행하였다. 우리들의 대대적인 대청소에 아이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도왔고, 마지막 물 바닥 청소는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아이들은 신나 하며 자신 나름의 방식대로 바닥 청소를 가동하였다. 누군가는 물걸레를 가지고 춤을 추기도 하고, 누군가는 장난감 유모차에 올라가 물청소 기계 역할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나게 물청소 기계를 몰기도 하였다.  


대대적인 물 청소 놀이가 시작 되었다.


모든 물청소가 끝나고 이튿날, 남편 지오르지오 Giorgio가 마지막으로 바닷가의 집을 모두 정리하고 마지막 짐들을 트랜스 포머 그린 벤에 가득 싣고서 돌아왔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을 위한 공동 공간에 들어갈 여러 책상들과 책장, 재료들을 조금씩 넣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키에 맞춘 책상들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책들을 주제나 연령에 맞추어 바구니에 담아 여기저기에 배치하였다.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같은 수 작업을 하기 위한 재료들을 아이들이 가장 손에 닿기 쉬운 높이에 배치하고, 숫자 놀이와 글자를 익히기 위한 자료들을 다음 위 선반에 배치하였다. 또한, 조금 연령대가 높은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테이블 게임들을 가장 위에 놓아 원할 때면 언제든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배치해 두었다. 또한,  조금 더 낮은 연령의 아이들을 위한 숫자 놀이와 생각하는 놀이 자료들은 따로 높이가 낮은 미니 테이블에 배치하여, 아이들이 손쉽게 꺼내서 사용할 수 있게 유도하였다.  


새롭게 정돈하기 시작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


이렇게 준비하는 과정 내내 Daniela와 함께 어떻게 하면 언어가 다른 모든 아이들이 함께하면서 즐겁게 자신의 흥미를 따라서 배워가는 과정을 옆에서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고심하고, 토론하였다. 어차피 아이들의 전반적인 교육을 책임지는 것은 각자 부모들의 몫이고, 우리들은 이 아이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호기심들과 흥미, 관심거리들에 적절하게 맞추어서 자료들이나 재료들을 제공해줌으로써 관심 갖는 분야에 조금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로 하였다. 또한, 아이들끼리 충돌이 생겼을 때 언어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번역을 해주는 역할을 하거나, 같은 언어를 쓰는 아이들끼리도 의사소통에 도움이 필요할 때 중간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약 1주일간 공간을 정돈하고 자료들과 재료들을 준비하고, 일주일에 3번 3시간 아침시간(10시-13시)과 일주일에 정기적으로 한번씩 주변으로 소풍 가는 것을 기획하여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정했다.  


아이들의 배움터에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후딱 아침식사를 마치고 언제나 Federico의 캠핑카 앞의 그네와 해먹이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나무 앞에서 모이던 아이들의 만남의 장소가 이제는 "Casetta" ("집"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대부분이 캠핑카나 카라반에서 지내므로, 어쩌며 유일하게 있는 진짜 집이 이곳 이라설까? 아이들은 이렇게 부른다.)로 바뀌었다. 장소의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새롭게 정돈된 "Casetta" 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져보고 놀기 시작했다. 특히 요리 놀이를 좋아하는 많은 아이들을 위해, Casetta 집의 바깥에 오븐기와 가스레인지, 설걷이대, 요리 할 수 있는 작은 탁자와 여러 그릇들과 냄비들, 프라이팬, 숟가락과 포크들을 놓았다. 여러 물건들을 고르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고기를 갉 때 쓰이는 기계는 아이들이 음식을 만드는 데 아주 좋은 기계였다. 아이들은 이 기계에 풀과 꽃, 와인 코르크 마게(대량의 와인 코르크 마게들을 레스토랑에서 가지고 왔었다)들을 넣어서 열심히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꽃 향기와 함께 멋진 음식들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든 음식들을 쟁반에 잘 받쳐서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다. Mailo에게 내가 받은 식사는 노란색 꽃들이 들어간 음식으로, 동양인인 나를 생각해서 젓가락(실재는 핀셋이었다.)과 차를 동그란 접시에 얹어서 가져다 주었다.  


Mailo에게서 받은 나의 식사


조금씩 조금씩 외형적인 공간들이 만들어 짐과 동시에, 아이들도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찾아서 놀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배워간다.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도와주고, 작은 아이들은 자신보다 큰 아이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익혀 나간다. 아이들 스스로 공동 놀이를 계획하고, 이를 달력에 기록하기도 한다. 한 예로, 여러 아이들이 해적 놀이들을 즐겨했고, 지도들을 만들곤 했는데, India가 “보물찾기” 놀이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이로써, Daniela와 India는 보물 지도들을 제작하고, 보물을 찾기 위한 힌트들을 숲의 여기저기에 숨겨 놓았다. 마지막으로 찾은 지도에 표시해 놓은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은 India의 캠핑카였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마법사(India의 엄마인 Julia)였다. 여러 시간 동안  애써서 찾은, 마법사가 나눠 주는 보물( 비스킷)을 모든 아이들이 나눠 먹으며 신나 했다.


가이아와 India의 비서 놀이


어느 날은, 아들 율이가 하려고 준비해 놓은 목공 책들과 재료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아들 율이는 보물 상자 만들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던 마음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무 블록을 가지고 배를 만들어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연히 책상 근처를 지나가던 Nina가 이미 준비된 목공 책들과 재료들을 보고 보물 상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를 자르고, 목공 본드를 붙이고, 작은 못들로 고정을 시키며 Nina는 야무지게 만들어 가고 있었고, 이를 지나가다 본 Ayrin이 Nina를 돕는다. 또한, 숫자를 익히기 위해 제작 했었던 보석 카드는 그 용도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로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얼굴에 붙이기도 하고, 와인 마게에 붙여서 작은 사람들을 만들기도 하고, 보석이 떨어져 나가 뒷면에 숫자만 남은 카드들을 벽에 붙이기도 하고, 가위로 잘게 잘게 자르기도 하면서 각자 자신만의 방식대로 이를 사용하였다.

 

다른 용도로 쓰여진 보석 숫자 카드


어느 날 아침에는 토끼들이 집에서 나와서 토끼들을 찾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각자 당근들과 감자 깎는 칼을 가져와서 토끼들을 유인할 당근 파스타를 만들기로 하였다. 최근에 우리 집시의 집 앞에서 한창을 양파 껍질 까는데 재미를 붙이던 아이들이었기에, 이번 당근 파스타 만드는 작업도 꽤 흥미로웠다. 문제는, 당근 파스타를 깎아가는 도중에 배가 고파진 아이들은 토끼들에게 당근 파스타를 주는 대신에 자신의 배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결과보다 그 과정을 즐겼고,  조금이나마 남은 당근 파스타는 결국, 공동 부엌 공간으로 들어온 말 Zua를 바깥으로 유인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당근 파스타는 토끼들이 아닌,  말 Zua의 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양파까기에 재미붙인 아이들
토끼에게 줄 당근 파스타 만드는 중
서로에게 인사를 건내는 말 쥬아 Zua와 아이들


한쪽 커다란 벽에 커다란 종이를 붙이고, 아이들 스스로가 그날그날 하고 싶은 활동들을 정하고 자신의 이름 난에 적음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커다란 아이들이 흔쾌히 동의를 했고, 다음 주부터 이를 실행해보기로 했다.  


방문 한 켠에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오후 활동들을 제안하는 달력을 붙여 놓았다. 이곳에는 체스 게임, 테이블 게임, 재봉틀로 바느질 하기, 피자마 파티, 김밥 만들기, 요가 등등 아이들이 흥미로워하는 활동들로 조금씩 채워져 갔다. 첫 번째 타자로, 여러 동물들을 키우고 있고, 3마리 말을 가지고 있는 Nadia가 말과 소통하고 탈 수 있는 활동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아침 10시 모든 아이들과 대부분의 어른들이 Nadia와 Felipe의 도움을 받아, 말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으며, 말 위에 올라가서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하는지를 상세히 알려주며 아이들 하나하나가 원하는 말에 타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첫째 아들 율이는 겁이 많아 시도하지 않을 것만 같았건만, 아침을 후다닥 먹더니, 말 보러 가야 한다며 가이아를 재촉해서 먼저 가 버렸다. 원체 놀 때는 조심성도 없고, 덤벙대고, 주의력 없기 유명한 율이 인데, 말 위에 올라간 율이는 사뭇 달라 보였다. 무척이나 침착한 표정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 갈퀴를 잡고 말과 함께 움직였다. 갑자기 아들이 훌쩍 커버린 것만 같아 보였다.


갑자기 훌쩍 커버린것만같은 율(왼쪽), 말을 이미 타고 다니던 Nadia의 아들인 Ayrin이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묘기 (오른쪽)


지난주에 함께 한 피크닉에서 나의 금발 머리 딸 가이아는 자신보다 몇 배나 커다란 말 Zua에 올라타 5km 거리의 숲을 가로질러 Nadia와 함께 집까지 돌아오는 특별한 경험을 했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말 쥬아 Zua는 물론이고, 차카붕Chakabung 과 마이 바 Maiva 위에도 타고 싶어 했고, 결국 가이아는 모든 말 위에 기어코 다 타고야 말았다. 보통 인형 말들이나 이미지로써 보이는 말들, 혹은 유니콘들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실제 자신보다도 몇 배나 커다란 말들을 보면 그 말 등 위에 훌쩍 올라간다는 것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만 4살인 영국 소년인 Lorcan의 경우가 그랬다. 타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고, 결국 차카붕Chakabung말 위에 올라갔을 때에도 긴장과 경의의 표정이 교차하는 게 보였다.  나는 말 위에서 Lorcan이 내려왔을 때 물었다. “Lorcan, how are you feeling? Lorcan, 어땠어?” 그러자, Lorcan 은 흥분에 들뜬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으로 엄지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천성이 말위에 있어야 할 팔자라고 가이아를 보고 다들 말한다.


이렇게 아이들이 자연과 동물들과 어우러져 소리 없이 자라나고 있다. 그 경이적인 소리가 내게는 소리 없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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