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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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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n 12. 2020

달라지는 너와 나

#006 여섯 번째 이야기

집시의 집으로 옮기고서 무엇이 너와 나를 달라지게 했는지를 돌아보았다.  


우선, 집시의 집 주변을 에워싸는 광활한 자연 환경 속에서 나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새삼 깨닫는다. 특히, 이곳에서는 “물” 이란 아주 귀한 존재이다. 이곳에서 물이란, 도시나 여느 시골집처럼 수돗물을 틀면 물이 저절로 하수관을 통해서 나오듯 쉽게 얻을 수 있는게 아니다. 트럭을 몰고 시냇물 가에 가서 직접 물을 길어서 물 저장고에 넣고, 이를 관에 연결하여 카라반이나 캠핑카의 수도관을 통해서 나오게끔 해야 한다. 마치 70년대처럼 모두가 트럭 뒷좌석에 아이들까지 함께 몸을 싣고 가서 물을 길어오는 과정은 몸이 노곤하기는 하지만 이 물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이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자신의 손으로 길어온 물을 쓰므로 얼마나 물이 귀하고, 아껴서 써야 하는지 몸소 느끼게 된다. 처음 물을 가지러 갈 때, 둘째 딸 가이아는 트럭 뒷 자석에 타는 게 멋져 보였는지, 보자마자 바로 뒷자석에 올라타겠다고 두 팔을 위로 뻗었다. 또한 물을 원체 좋아하는지라, 고사리만 한 작은 그 손으로도 열심히 자기 몫을 다하여 물을 길어 왔다. 반면에, 첫째 아들 율이는 자신이 싫은 일은 원채 잘 안 하려는 성격 인지라, 레고 놀이에 정신이 팔려서 안 가겠다고 했다. 누가 가고 안 가고는 자신의 마음이고, 자신이 결정하는 일이기에, 아무도 그런 율이를 탓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루 종일 흙 바닥을 뒹굴고, 여기저기 숲을 뛰어다니고 온 뒤에 집시의 집에 들어오기 전에 아이들은 언제나 손과 발을 깨끗이 물로 씻고 들어오게 되어 있다. 매일 밤마다 율이가 손과 발을 씻을 때면 이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 물을 누가 가지고 왔는지 물어본다. 처음에는 알면서도 대답하기를 꺼려했고, 제차 묻는 나의 질문에 볼멘소리로 대답을 한다. 그러면, 이 물을 친구들과 다른 어른들이 왜 가지고 오는지 생각해 보았냐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아무도 아들에게 “물을 가지러 꼭 가야 한다” 라고 강요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지만, 이 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가져왔고, 왜 이 공동체에서 물이 필요하며, 이 물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기다린다. 그리고 비록 나이가 4살, 6살, 8살인 아이일지라도,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물을 아껴 쓰다 보니, 레스토랑 문을 다시 열은 나의 이탈리안 셰프 남편은 레스토랑에서도 자연스럽게 물의 사용량이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물믈 길러 가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시냇물에서, Odemora, Portugal


또한, 우리가 쓰고 버리는 물이 하수관을 통해서 여과시키는 게 아니라 바로 땅으로 흡수 되는지라, 접시 닦는 세제를 포함해서 우리가 쓰는 샴푸, 비누들도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제품으로 과하지 않게 쓰도록 신경 쓰게 되었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인데, 왜 우리는 여태껏 우리가 쓰는 세제들에 민감하지 못했을까? 하는 반문과 반성을 해본다. 시간이 없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게으르고 책임 없는 답변일 것 같다. 우리가 쓰고 버리는 물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수관을 통해서 버려지기에, 그렇게 둔감 했고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았나 싶다. 이는 마치 눈 가리고 아웅 거리는 꼴이지 않았을까?  


집에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서 세탁기를 일주일에 몇 번을 돌리는지 생각해 본다. 포르투갈의 바닷가 집에서는 매일같이 바다에 가기에 옷이 별로 필요치 않았고, 이탈리아의 숲 속 유치원에 다닐 때면 아무리 겉에 방수 옷을 입어도 물놀이나 흙 놀이, 진흙탕에서도 뒹굴면서 험하게 놀기에 하루에 옷 하나씩은 빨래 통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은 세탁기를 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에, 집시의 집에 와서는 어차피 밖에 발을 내어놓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은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놀기에, 밖에서 입는 웃을 하루에 하나씩 빨래 통에 넣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입는 옷은 정말 너무 더러워서 입지 못할 때까지 버티고 입고, 카라반에 들어올 때면 손, 발을 깨끗이 씻고 아예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빨래는 열흘에서 2주일에 한 번씩 한꺼번에 하게 되었다. 10kg에 4유로를 내면, 세탁이 끝나니 한 달에 8유로~12유로로 빨래는 해결되는 것이다. 또한, Jonny가 계발한 자전거 세탁기는 직접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세탁기를 돌리는 것으로, 전날 저녁에 빨랫감들을 미리 물에 재어 놓았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슬슬 페달을 밟으면 전력이 필요 없이 공짜로 빨래를 할 수도 있다.


Jonny가 계발한 자전거 폐달로 작동자는 세탁기


집시의 집은 우리가 살아오던 집의 반의 반의 반 밖에 안된다. 그렇기에 오기 전에 또 한 번 많은 짐들을 버리거나 창고에 보관해 두고 왔다. 이 말인즉슨,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고, 살아가는 데에 그렇게 많은 물건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직 유럽의 국경들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는 물건을 사러 쉽게 나갈 수도 없고(보통 상점들이 고객의 인원을 제한해서 들여보내거나, 계산대 부분만을 오픈하여 정확하게 사고 싶은 물건을 알아 야지만 구입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곳은 시내에 가려면 어쨌든 차를 타고 가야 하므로, 정말 필요한 물건 이외에는 되도록 구매를 자재하게 되었다. 특히,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여분으로 더 사는 일은 거의 드물게 되었다. 왜냐하면, 여분들을 쟁겨 놓을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어쩌면 평소에 함부로 버리기라도 했을 듯한 물건들도 또 한번 다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새롭게 재활용 할 수 있을지 고심해 보게 되었다. 종이도 예전 같으면 마구 쓰고 버렸을지도 모를 것도 양면으로 쓰고, 빈 공간들을 잘게 잘라서 메모지로 만들기도 하고, 아이들 입에서 “종이 아껴서 써” 라는 말을 서로에게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다.


며칠 전,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카페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주문 했었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곳은 관광객들을 위한 곳이기에 카페만 해도 열 군데가 넘고, 가끔 아침식사를 카페에서 느긋하게 하거나 오후에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자주 가곤 했었다. 반면에, 집시의 집에 오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의 간식거리는 우리들이 직접 만들어 먹는다. (쿠키, 팬케이크, 크레페, 과일 스무디, 과일 셰이크 등등) 뒤돌아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은 게 이번 2달 동안 4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이스크림을 먹는 날은 정말 축제나 마찬가지였고, 이렇게 작은 것에도 신나 하고 감사하게 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테이블 놀이가 끝나고서 직접 만든 간식을 함께 나눠먹는 아이들


평소, 남편은 우리 아이들은 너무 텔레비전을 안 본다고, 다른 애들 보면 하루에도 1시간에서 2시간씩도 보는데,,,,라고 투덜대곤 했었다. 꼭 안 보여 주려고 혈안이 든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을 하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가서 만화나 다큐를 볼 틈도 없이 잠에 들기가 일쑤였다. 이런 아이들이 집시의 집에 오게 되자, 친구들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기가 바빠 약 2-3주 동안은 아예 만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었다. 이제 점차 친구들과의 생활이 생활화 되자, 일주일에 1-2번씩 만화와 다큐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들의 하루는 다른 여러 가지 놀 거리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집시의 집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우리 가족들은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되고, 뭐든지 많지 않기에 아껴 쓰고, 서로 나눠 쓰게 되었다. 땅과 풀과 꽃 내음을 맡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에 귀 기울이고,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비를 눈을 감고 온몸으로 느껴 본다. 그리고 나 자신도 이 자연의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이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시간을 들여 아이들과 함께 음식들과 간식들을 만들고,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 음식과 시간과 삶을 나누게 되었다. 지금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서로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때, 우리 공동체는 두 팔을 벌려 가슴 깊은 인사를 나누고, 정을 나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미래라고 굳게 믿는다.

말 위에서 잘거라며 원채 내려올 생각을 않는 가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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