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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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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Apr 11. 2020

집시의 집에 들어갈 땐 모든 걸 벗어놓으세요.

#002 두 번째 이야기

집시가 되기 위해서 일단 우리는 카라반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평소 여행 다닐때 캠핑카처럼 애용하던 일명 트란스 포머 그린 벤이 있기는 하지만, 4 식구가 장기간 집처럼 살기에는 덩치가 너무 작았다. 우리의 예산 안에서 살 수 있는 카라반은 여행자들의 구매를 자극하거나, 구경하는 이까지 잔뜩 설레게 하거나, 이들에게 바람을 부풀어 여행길을 떠나게끔 자극하는 모던하고 세련되고 새삥한 카라반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중고 카라반 사이트들을 통해 여러 구조들의 카라반들을 몇 주 동안 째려보고 연구한 결과, 우리 가족에게 걸맞는 카라반을 발견하였다. 자동차와 연결하는 연결부위를 제외하고 이 카라반의 길이는 5M 50cm였다. 이 말인즉슨, 이 집시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진장 많은 살림살이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 책들을 제외하고는, 우리들의 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이렇게 두 군데에 있던 살림살이들이 1년 전쯤에 합쳐지면서 (물론 그때에도 꽤 많이 버리고 포르투갈로 왔었지만,,,,그래도 참 멀었었다. "무소유,,, 아직 멀었다." https://brunch.co.kr/@anachoi/44 참조) 의외로 짐들이 늘어버렸었다.


그래서 일단 과감히 버릴 것들부터 추리기 시작했다. 가장 쉽게 손을 델 수 있는 부분이 옷가지들과 침대보들이나 이불들이었다. 침대보들과 이불들은 더블과 싱글 사이즈들 각각 2개씩만 남겨놓고 모두 정리해 버렸다. 첫째 아들 옷은 물려받을 곳이 없고, 아이가 커가면서 중고로도 사기가 힘들어지자, 딱 필요한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둘째 딸인 가이아는 복이 터져서 여기저기에서 많은 옷들을 태어나서부터 항상 물려받아서 옷들이 넘치고도 남았다. 그래서 숲에서 뛰어놀기에 좋을 활동적이고 단순한 옷들을 제외하고서는 모조리 헌 옷 수거함으로 넘어갔다.


또 한 가지, 집시 집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쓰레기 통에 들어갈 수는 없는 고민 덩어리 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버리기도 그렇고, 안 버리려니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10년도 더 넘은 Mac PC와 텔레비전, 책들을 꽃아 두던 책장들과 선반장들이다. 남편과 나의 멋지게 차려 입고 레스토랑이나 공연장이나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한 외출복들도 남기고 갈 짐으로 분류했다. 우리들의 사진 앨범들도 가지고 가기에는 너무 버겁고 무겁기에 놔둘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딱 가족들 사진들만 몇 장 쏙 뻬놓아야겠다.


다행히 아이들의 책들은 그 닥 선정할 필요 없이 아무리 많아도 다 가져가기로 했다. 커뮤니티 가족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서로 나눠 볼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다. 테이블 게임들이나 아이들의 미술재료들도 빠질 수 없겠다. 개인적으로 재봉틀과 약간의 천들, 그림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과 도구들을 조심히 챙겨본다. 또한, 남편과 나의 카메라와 렌즈들과 삼각대도 욕심 내어 챙겨본다. 숲과 산에 갈 때 필요한 운동화 한 켤레와 여름용 샌들 하나씩이면 충분하겠다. 남편이 셰프이다 보니, 파스타나 라비올리를 만들 때 필요한 제면기와 믹서기, 좋은 식칼들을 안 챙길 수가 없게 된다. 아,,,,이렇게 일일이 늘어놓으니 짐이 이미 잔뜩 이다. 아, 아무리 그래도 엄마의 유골도 챙겨가야 한다.


이렇게 짐들을 구분해서 나누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무슨 짐들이 이렇게 많이도 쌓이는 건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반성의 순간이다. 법정 스님의 책들은 무늬로만 읽었나 보다.


아직 집시의 집에 들어가려면 부지런히도 나의 욕심들과 물건들을 버려야 한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나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건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렇게 욕심을 못 버려서 모든 걸 움켜쥐고 살아가려고들 한다. 많이 소유할수록 그만큼 삶이 안정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물건들이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는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많은걸 소유했다고 해서 행복할까? 아니면 가지지 못했기에 불행해야 할까?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가져온 이 위기에, 우리 가족들에게 가까운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경제가 안정될 때까지 어딘가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들 충고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나라에 가서 일한다 거나, 하루에 몇 시간이 되었든 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가족들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끼리 떨어져서 산다는 것도 당연한 희생 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결정을 내렸다. 돈이 바닥이 나서 내일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 하다면 어쩔 수 없을 거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니다. 그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돈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일까? 살아가는데, 이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지. 이것도 없이 어떻게 살아? 라며 구입하거나 누리고 싶은 사치들이 얼마나 많을까? 소유의 눈높이를 낮추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충고와는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 가지 않을 것이고, 가족들이 떨어져서 살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이 멋진 집을 포기하고 카라반을 끌고 숲이 우거지고 강물이 흐르는 곳으로 떠날 것이다. 안정된 삶이나 안정된 직장이나 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안정된 것들은 상황에 따라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만약 변화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이 변화에 맞서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시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


아이들의 캠핑카 : 필요한 물건들을 야무지게 챙겨서 여행을 떠난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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