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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쟌카 Aug 18. 2019

클래식 전공자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들어온 회고

전혀 비슷하지 않았던 두 문화 업계에 대한 회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을 나누며 "여전히 음악 쪽 일을 하는구나! 신기하다" 라는 코멘트를 들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충'이 될 가능성을 일축한다.


13년간피아노 연습실에서 10대를 보낸 나는 이제 회사에서 K-Pop 과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무를 하고 있다.


대중문화 업계로 들어오고자 자소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평생 해왔던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라는 나름의 자부심과 로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사랑했던 저는..."으로 시작한 내 자소서는 피아니스트가 되려한 일련의 과정, 음악에 대한 열정과 왜 대중문화 업계에 들어가려하는지 등을 기술했다.


실제로 일을 시작해보니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는 것과 음악 업계에서 비즈니스 실무를 보는 것은, "얘는 음악을 좋아해서" 라는 말이 주는 늬앙스와는 달리 연결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한 유명한 대학 졸업 연설 'Connecting the Dots' 에서, 현재와 동떨어지거나 쓸모 없어보이는 과거의 경험이라도, 지나고 돌아보면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했었다. 응용력이 부족한 것인지, 한 평생 연습실에만 틀어박혀 메트로눔을 틀고 피아노 연습만을 생활화한 나로써는 도무지 실무와의 연결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나쁘지 않은 신입'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는데 도움이 된 것은, 피아노 전공자로써의 길을 포기하고 절절히 찾아나섰던 인턴십에서 눈대중으로 배운 사회 생활과 빠르게 글을 번역하는 훈련 등이었다. 바흐의 수학적 작곡법을 배우고 콰르텟을 작곡하며 리사이틀/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연습실에서 사춘기를 보낸 경험은 아니었다.


한때 음악을 연주하며 그 음악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나'였다면, 이후엔 완성된 그림 (혹은 청사진)을 가지고 냉정하게 그 가치를 최대화할 줄 알아야했다. 마냥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써는 냉정한 가치판단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혼자서 연습하고 파고들기를 반복한 내게 협업의 가치는 생소한 부분이었다. 항상 '나만의 예술적 철학'를 구축하는 연습을 했던 이전의 나와는 달리, 타인과의 협력이 중요한 업무는 고독히 일하려거나 내 색깔을 강하게 주장하려하면 더더욱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타인의 눈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설득'해야하는 일이 잦았으며, 그 어떤 주장이라도 데이터와 근기가 단단해야했다.


정말 재밌는 것은 음악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무난한 성격으로 다소 평범한 편이었던 나는 입사 후에는 꽤나 '독특하다, 개성이 강하다' 라는 평을 받곤 했다. (신입 때 많은 것을 알려주시고 참아준 주위 분들께 감사드린다)


대중음악 내에서도 작곡가('만드는 사람')와 레코드 레이블(사업하는 사람)의 입장차와 견해는 판이하게 다를 때가 많다.

하물며 클래식과 대중음악이라는 장르적 차이는 어떨까.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특히나 '음악'이라는 짧은 단어에 묶이기엔 그 양상이 극단적으로 상이하다. 실제로 20살때까지는 대중음악의 강한 비트가 클래식 전공자의 귀를 상하게 한다하여, 피아노 선생님이 이어폰으로 대중음악을 듣는 것도 금지하였다. 나는 13년간 클래식을 공부한 것보다 아이돌 팬 문화에 발을 담았다면 훨씬 더 그 소비 생태계에 유용한 인력이 될 것이었을 거라도고 생각한다.


클래식의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집스러워야한다. 대중 문화는 보편성(트렌드)을 이해해야한다. 자신만의 색깔과 분석으로 극찬받는 유수의 연주가들과는 달리, 대중음악은 트렌드에서 반발짝 앞선 무언가를 제시하였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위와 같은 간극은 내 머릿속 생각하는 프로세스를 엎어버리는 작업을 필요로 함과 동시에, 굉장한 괴리감을 주곤 했다. 지난 13년간의 피나는 노력과 투자가 증발해버렸다는 사실은 나 자신이 믿기 힘들었으니까. 한편으로 지금은 전에는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던 "무계획이 계획" 이라는 신조도 일부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아직은 실무의 세세하고 자잘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언젠가 내가 밟아온 길을 돌아보며 말할 것 같다. "다 쓰임이 있었노라"고. 고등학교 때 적은 수많은 음악사 노트와 음악이론, 노트가 빼곡히 적인 악보를 때때로 뒤적거려 보는 이유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내 인생에, 개연성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학교 때 배운 서체를 자신이 만든 컴퓨터에 시그니쳐한 폰트로 입히는 굉장한 응용력을 가진 스티브잡스의 quote으로 글을 맺는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ㅡSteve Jobs


미래를 내다보고 점들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를 돌이켜 볼때에야 그들을 연결시킬수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미래에 점들이 연결될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직감, 운명, 인생, 숙명 그 무엇이 되었든

믿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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