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SWOT,왜 합니까? 하지마세요.

SWOT 왜 합니까? 전략부장님 감사해요

"SWOT 왜 합니까?"


전략부에 들어가니 부장님이 제일 먼저 꺼낸 이야기였다.

"미스터 변, 혹시라도..

이미 알려진 방식의 전략수립프로세스 거쳐서 도표, 그래프 그려오면

그 보고서 찢어버릴 겁니다! ".

물론 웃으면서 말했다.

옆에 있던 팀원들은 '정말이야!' 라는 글자를 얼굴로 쓰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신기할정도였다.


"특히, SWOT 해서 가지고 오면 당신도 같이 날려버릴 겁니다."라고 했다.


'뭐 해오라는 거지?' 싶었는데,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럴싸하게 PPT 만들어 올 생각하지말고 힘 있는 알맹이 가지고 오세요.

프레시한 아이디어, 기똥찬 구도 짜서 가지고 오세요."

대충 이해는 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미스터 변이 만든 거 내가 거의 안 쓸 수도 있습니다.

나한테 네가 중요한 건 당신만의 인사이트, 통찰력이 느껴지는 아이디어,

영감을 가져 오는가?에 달려있어요" 라고 했다.


이건 약간 미화한거고

사실은 어차피 네가 만든 거 내가 거의 안 쓸 거야 라고 말했다.

그런데 신기한건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는 사실.

무언가 독특하고 차별화된 컨셉이 있는 부서라는 기대감이 컸다고 해야하나?


이어서 선임연구원이 알려주기 시작했다.

"통상 보고시간은 15분 정도로 잡습니다.

지금까지 경과에 관한 것은 3분이내

나머지 12분은

최고 결정권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Decision Space (디시즌 스페이스, 결정공간이라고 해석해야 하나?)에 있게 하는 겁니다."

라고 했다.



Decision Space, 디시즌 스페이스 결정, 공간 이라고 번역하기에는 단조롭기는 한데

뭔가 좀 고요한 공간안에 놓여진 1인용 가죽 쇼파

거기에 앉아서 결정을 고심하는 최고 결정권자가 떠올랐다.



사무실 벽을 둘러보면서

디시즌 스페이스에 꽂혀서 무슨 뜻인지 물어봐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선임 연구원은 일단 자기 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우리가 해야되는 이 12분 동안 해야하는 것은

일단, 이슈가 무엇인지? 프레이밍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데,

이 이슈에서 어떤 전략컨셉을 전략부에서 제안하려고 하는지

한 문장으로 이해되게 명언처럼 제시해야 합니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브랜드 메시지 하고 비슷할 수 있습니다."


부장님은 이 분야에서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고들 했다. 그만큼 예민해진다는..

옆에서 다들 신이 나서 말했다.

부장님 안계실 때 부장님 얘기하는 거니까 이런 걸 뒷담화라고 하는 건가?

칭찬인지 흉인지 알아차리기 어렵게 말하는 거 봐서

확실히 전략부서 사람들 다웠다.


앞서 선임연구원이 말했던 전략 컨셉 메세지는,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북한은 중국의 자산이지 빚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여기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아무리 중국과 북한과 교류가 없어보이고 일시적으로 냉랭해 보여도 빚, 부담(Dept)로 보지는 않는다고 하면

어떤 관계인지 정리가 쉽다. 임팩트도 있고 상징성도 있다.

브랜드 메시지를 예로 들자면 '에어 비앤 비'의 '낯선 도시에서 우리 집을 만나다.' 같은 것이다.

약간 시적인 느낌이 들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문장으로 잘 정리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쉬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있어빌러티’라고 표현되는 거창하게 쓰는 거, 트레이드 오프하라고 하셨죠?"

아까 부장님이 한 말을 선임연구원이 다시 정리해주었다.

"하지말라는 겁니다."

"형용사적 수식어도 금지."

그리고 자기 경험도 말해주었다.

"한번은 내가 초안 가져가니까. 책상에 탁탁 털더라구요.

A4 한묶음 튀어나온거 없게 정리하려고 하는 거 탁탁 터는거 있잖아요?

정말 그렇게 모션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가져온 거 쓸 게 없어.

있어보이는 거창하고

아름다운 형용사 다 빼니까. 은는이가 밖에 안 남네."

나도 그 모습이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분 나쁘지는 않았어요. 부장님이 가진 마력이랄까?

뭔가 다르지 않아요? 저 사람?"


그랬다. 여기는 뭔가 달랐다.


"그리고 이건 지난 번 보고서니까 일단 한 번 보고 감을 좀 잡아 보세요."

선임 연구원이 생각보다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은근히 고마웠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익숙한 장면처럼 회의있어서 나갔다 온다면서 나갔다.


일단 보고서를 보니

스티븐 잡스의 프레젠테이션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패턴이었다.

어쩌면 무미건조해 보일만큼 단조롭고 굉징히 사무적인..

보고서는 가급적 한 장에 7줄 정도 들어가게 작성되어 있었다.

제목에 두 줄 포함하면 9줄 정도가 루틴인 듯 했다.

제목이 왜 두줄이냐면 프레이밍한 이슈 한줄, 전략 컨셉 메시지 한줄

딱 제대로 된 헤드라인 이었다.


"그래, 이거지!"

뭔가 나의 뇌속에서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영화 <리미트리스> 주인공이 알약을 먹고 집중력이 불타오르는 것 처럼 말이다.


대부분 이제까지 경과와 문제를 길게 설명하고 마지막 장에 어떻게 할까요?

토의를 하자는 패턴이거나

이미 정해진 하나의 안을 염두해 두고

들러리 2개 안 정도 내세워서 형식적인 승인의 절차를 거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었는데

이건 달랐다.


SWOT을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머지 부분은 메모로 간결하게 어떤 루틴인지 적혀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제시

옵션 별 시나리오 예상

현 수준에서 가능한지?

지금 당장 할 수 없다면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간결하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

다른 부서와 충돌이 생기는 부분이 있는지?

플래닝 부서에 어떻게 이해시키고 넘길 것인지. 고려할 것

이론적 배경이나 학문적 근거는 백업에 넣어두기

보통 5장 정도 보고서 만들면

10장정도 백업으로 넣어두는 듯 했다.

앞에 내용 이해 안 되면 바로 찾아보라고 참조 문서처럼 만드는 것 같았다.




'전략은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사람이 잡을 수 없는, 높은 하늘의 구름을 잡으려고 허공에 손 휘젓는 게 떠오르지 않았고

정말 뜬구름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전략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략을 다루고 싶어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전략은 교양강의 같이

단순하게 방향제시하고 듣기 좋은 소리 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왜 그러냐면, 전략의 아웃풋은 박수치면서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략의 아웃풋 중 하나가 Operation Plan, 즉 운영계획이었다.


군대라면 작전계획이다.

전략부서에서 제안된 전략 컨셉이 최종결정권자의 승인을 받으면 여기에 맞춰서 운영계획,

군대라면 작전계획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략컨셉이 변하면 운영계획, 작전계획은 일단 무의미해질 수 있다.


그래서 전략디자인이 중요한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전략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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