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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콩 Mar 26. 2023

초심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나에게 소중했던 지갑은 첫 회사를 입사하는 그날이었다.

가죽으로 되어 있던 장지갑을 양복 왼쪽 주머니에 항상 두고 다녔다. 지금이야 각종 00 페이 등으로 모바일로 결제를 하느라 굳이 지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지갑은 직장인의 필수품이었고 또한 남자들에게 있어서 시계 다음으로 소중한 액세서리였다.

가죽질감의 지갑에서 항상 여유 있게 빳빳한 지폐를 넣고 다니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지갑에는 약간의 지폐, 신용카드, 신분증, 명함, 사진등으로 채워지고 지갑이 두꺼워지면 마음도 풍족했었다.


시간이 지나 모든 기능이 휴대폰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갑의 효용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폐는 각종 카드사의 모바일결제 시스템이 대체하게 되었고 지갑 속 사진은 손쉽게 휴대폰에 수백, 수천 장의 다양한 사진들로 대체되었다. 심지어 신분증 역시 최근에는 모바일 신분증으로 대체를 하고 있다. (물론 은행, 공공기관등에서 신분증 요구를 하기 때문에 아직도 플라스틱 신분증을 두고 다닐 수는 없는 상황이다)


가방에서 모처럼 지갑을 꺼낼 일이 생겼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지갑을 보니 가죽은 다 벗겨지고 찢어져 있는 모습이다. 마치 이제 수명을 다해 더 이상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투정을 부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동안 관심도 없이 가방 속 깊숙이 쳐 박혀 주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제 역할을 묵묵하게 해 왔던 지갑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어서 인지 깨끗하게 물티슈로 묵은 먼지들을 닦아주었다.


한때 지갑 속에 여유돈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지폐 한 장 조차 없고 신분증만 넣고 다니던 지갑을 보니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나도 이제 시간이 더 지나면 나의  지갑처럼 효용성이 떨어지겠지.  내가 하는 일은 누군가 혹은 시스템이 대체될 거라는 생각이 드니 왠지 쓸쓸함이 느끼게 된다.


한때 손에 늘 붙어 있던 시계는 언젠가 손목에서 사라진 거처럼 지갑 역시 어느 순간 내 옆에서 사라지겠지.


내방의 서랍 깊숙이 낡은 지갑들이 몇 개 있다. 지난 추억 때문인지 버리지 못하고 같이 고생했던 세월에 대한 미안함으로 고이 모셔두고 있다.

지금 옆에 있는 지갑도 곧 그 자리로 옮겨질 날이 머지않음이 느껴진다.


이젠 지갑 없이 핸드폰으로 모든 걸 대체하면서 나도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면서 한때 손목을 감싸고 있다 어느새 사라진 시계처럼 조용히 퇴장을 하는 날을 받아들이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불편하지만 다시 주머니에 고이 모셔두고 마지막 그날까지 함께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하는 길에  ATM 기계에서 빳빳한 지폐라도 몇 장 뽑아 지갑 속에 넣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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