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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Aug 10. 2017

농촌에선 생태적 삶을 살 거란 착각

[시골생활,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_여섯번째]이상과 현실, 격차가 있다

[이 쪽글들을 농촌생활학교 매거진에 첨부하는 것은....]
내 농촌생활학교 이야기는 6주간의 교육과정을 담았다.
농촌살이에 대한 환상을 심어줘서 농촌살이를 결정하게 하려는 것이 결코 교육 목적은 아니지만, 농촌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소개하여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것이 교육 목적은 맞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롭게 접하고 배우는 모든 것이 내겐 비판보다 찬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렇지만 시골 생활이 가장 아름답다거나, 도시가 아닌 시골이 유토피아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농촌의 현실, 무엇보다 귀농귀촌하려는 사람들에게 농촌생활에서 오는 장벽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시골생활을 환타처럼 그리는 글을 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쪽글로 내가 교육과정 중에, 오고 가다, 경험하고 또 듣게 되는 장벽들도 함께 싣는다.


나는 귀농귀촌을 하고픈, 아니 편히 말해서 농촌 시골로 이사하고픈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도시 생활이 주는 환경적인 스트레스(높은 인구밀도, 교통체증, 탁한 공기 등)와 경제적인 어려움(높은 물가, 주거난 등)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시골에서 지낼 때마다 내 몸과 마음이 더 편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시기를 미루지 말고, 내게 더 맞는 환경에서 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또... 내겐 생태적 삶에 대한 이상이 좀 있었는데,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농촌에서 살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살포시 했었다.


생태적 삶을 꿈꿨다고 해서 내가 뭐 대단한 환경 보호론자라도 되느냐 하면, 그런건 결코 아니다. 나는 그야말로 단순하게,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다음에 올 세대를 위해서, 가능한 한 자연에 피해를 덜 끼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다. 지구에 태어난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자연에 빚을 지고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빚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시에 있을 땐 늘 생각했다


'내가 농촌에 살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환경을 좀 덜 오염시키고 에너지를 좀 더 아끼고 살텐데...' 라고.  


하지만... 농촌에서는 도시보다 더 생태적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던 내 예상은 착각이었다. 그야말로 헉! 하며 말문이 막혀버렸던 상황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상황1. 비닐하우스의 비닐은 다 어디로 갈까?

농촌생활학교 5주차 교육 때, 여러 귀농 선배 농가들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딸기 농가를 찾아갔던 날인데 그 시기가 딸기 수확을 모두 마치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고 있는 때였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 실습으로 남자들은 비닐하우스 재정비를 돕고, 여자들은 딸기 배양토를 준비하는 일을 했다. 배양토 준비가 먼저 끝나, 남자들이 하는 일을 구경하러 갔는데 하우스의 비닐을 다시 씌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름 폭우와 태풍을 겪으며 비닐이 문제가 생긴 부분이 많기도 하고, 비닐을 사용한지 2년이 지나자 흙먼지나 물이끼 같은 것들이 비닐에 껴 햇빛 투과율이 떨어지게 되어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넓은 면적을 뒤덮은 비닐을 교체한다고 하면, 기본 3~4동에서 10동까지 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가들에게서 나오는 그 어마어마한 양의 폐비닐은 다 어떻게 처리될까? (평균적으로 하우스 한 동은 200평 정도가 된다)


마을의 폐비닐 수거 장소로 옮기는 작업을 1톤 트럭으로 여러번 하고서야 작업이 끝났다. 나는 궁금해 물었다.


"폐비닐도 재활용 쓰레기처럼 수거가 잘 되는 거예요?"


농촌 상황을 꽤 잘 아는 편인 동기가 말했다.


"마을에 아마 수거장소가 있긴 할 텐데... 수거 자주 안될걸요? 더군다나 농사짓기 바쁜 사람들이 폐비닐 나왔다고 꼬박꼬박 거기다 갖다 놓을리가 있나요~ 그냥 태우거나 밭 옆에 쌓아 두는게 태반이지..."




뭔가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돌아와 각종 뉴스 검색을 해 봤더니 실제로 연간 30만 톤이 넘는 비닐이 농촌에서 사용되지만 (하우스용 비닐뿐만 아니라, 멀칭용 비닐이나 비료 포대 등의 비닐도 있다) 수거율은 58% 정도에 그친다고 하고 [1], 대체로는 그냥 방치하는데, 태워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넓디넓은 농촌이라지만... 쓰레기를, 그것도 비닐을 태운다니!!! 시골 공기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것이었나?!

무엇보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비닐이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 하우스가 농촌을 점령하고 있다는건, 마치 그 후처리의 경로를 알기 어려운 폐건축물들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아파트와 빌딩에 점령 당한 도시와 다를바가 없어 보였다.


좀 더 확인해 보니 상황은 이러하다. 농촌 지역에도 기본적인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지자체마다 있고, 생활 폐기물과 각종 농사 관련 폐기물을 처리하는 제도적인 방침도 있다. 하지만 수거함과 수집장 설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동네들이 여전히 많다 [2]. 더 큰 어려움은 수거를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농촌 지역은 도시처럼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 모여 살지 않으니 그 장소까지 발생한 쓰레기를 버리러 가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농촌 지역에 사는 분들은 대체로 노령층이지 않읂가? 그러니 쓰레기를 버리러 가기도 멀고 또 자주 수거해 가지도 않아 쌓이기만 하니 주민들은 자기 논밭에서 혹은 집 마당에서 태우거나 묻어 버리는 길을 택할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건 이런 문제점들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농촌지역 지자체에서 폐비닐 수거율을 높이기 위해 수거 보상금 정책과 같은 방안들을 내놓고 있고 [3][4], 고령화된 농촌 상황에 맞게 순환/위탁 수거 등을 제도적으로 마련하자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4]. 이렇듯 물리적인 어려움이나 지자체의 관리 부족에 따른 문제는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가기 쉽지만,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 부분도 있다.






상황2. 그냥 원래 이리 하는거여~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닭을 몇 마리 잡아서 마을 회관에서 같이 먹은 날이 있었다. 많은 음식을 준비하지 못해서 상에는 백숙, 김치 두 가지 그리고 막걸리 뿐이었다. 조촐한 상이었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닭을 먹는 날은 어쨋든 잔치날로 여기시는지 기분이 좋으셨고 덩달아 대접하는 우리도 맛있게 먹었던 날이었다.


기분 좋은 식사가 끝나고 설겆이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닭뼈와 남은 김치와 밥이 음식물쓰레기로 나왔다. 나는 식후 믹스커피 한 잔씩 하고 계신 할머니들에게 물었다.


"할머니~ 음식물쓰레기가 좀 나왔는데 이거 어디다 버릴까요? 어디 버리시는데 있으세요?"


그러자 할머니들 중 가장 어려 보이는(?) 한 분이 일어서시며


"잉잉. 고것들 버려야지. 나 따라와~"


하셨다. 나는 음식물이 담긴 대접 2개를 들고 회관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가 회관 근처 밭으로 향하시길래 나는 대체로 음식물을 묻어 퇴비로 하는 경우가 많으니... 아무래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땅에 묻으시려나보다...하고 따라갔다. 그런데 할머니가 밭 머리 옆으로 흐르는 개울가에 이르자 내가 들고 있는 대접을 달라 하셨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할머니는 대접에 담긴 음식물을 개울에 훅 버리시는 것이었다!


"하...알머니... 이걸... 두 대접이나 되는걸... 여기다 버리시면 어떻게해요...."


하고 중얼거리는 나에게 할머니는 한 마니디로 일축하신다.


"그냥, 원래 이래 버리는거여~ 암시랑토 안혀~"




물론 자연은, 특히 물은 자정 능력이 있기 때문에 흐르는 개울가에 버려진 음식물은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농촌 시골마을에서 나오는 음식물의 양은 소량일 경우가 많고 할머니들의 살림살이에서 나오는 것들은 흙에서는 잘 썩고 물에서는 잘 정화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이 음식물 처리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고자 이 상황을 꺼낸 것이라기 보단, 바로 마지막 그 한 마디. '원래 이리 한다'는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기란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농촌 시골은 인구 밀도가 낮고 또 자연의 정화 능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아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정도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오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제도적인 관리나 규제보다 농촌 지역 주민들의 인식개선이나 교육과 홍보가 더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 평생 그냥 태우거나 물에 버리거나 땅에 묻어 버리는 방법으로 쓰레기를 처리한 어르신들의 생각을 어찌 쉽게 바꿀까?


학교 교육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가졌거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서, 재활용을 위한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도 종류에 따라서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로 분리해서 배출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귀농귀촌 한 뒤 이런 어르신들의 생활 방식을 마주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르신들을 개조하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도 시골에 왔으니 맞지는 않지만 그 방법을 따라서 살아야 할까? 실제로 귀촌 후, 바로 옆 집에서 태우는 쓰레기 냄새와 그을음으로 고생 중인 한 선배가 말했다.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가까이에서 맡으니 너무 고약하더라. 할머니가 태우는걸 담 너머로 보는데 비닐이고 캔이고 유리병이고 다 같이 태우시더라고... 그런데 이 할머니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때문에 난 더 힘들어. 쓰레기 태우면 안된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신고를 할 수도 없고..."

 




농촌에 살면, 자연과 가까이 살면, 생태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도시보다 더 많긴 다. 내 텃밭에서 나오는 식재료를 먹기 때문에 마트에서 과대 포장된 것들을 사지 않을 수 있고, 덕분에 포장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미생물을 이용해 갖가지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흙과 농작물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고, 집안에서 나온 생활용수를 모아서 텃밭에 이용할 수도 있다. 태양열 집열판을 집에 설치해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할 수도 있고 심지어 에너지를 한전에 파는 생산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물도 좋고, 공기도 좋고, 산도 좋은 강원도 화천 유촌리에서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 인증요건은 충실히 지키지만 아침마다 폐비닐, 페트병 등 쓰레기를 태워 없애고, 샴푸, 세제 펑펑 쓰면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려고 애를 쓰는 농사꾼과... 물도 공기도 산도 별 볼 일 없는 경기도 일산의 아파트에 살면서 화장실에 생태뒷간을 만들어 똥, 오줌을 모아 텃밭으로 가져가고 음식물 찌꺼기를 최소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도시민 중에 누가 과연 생태적인 삶에 충실하고 귀농 원칙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까?"

(박기윤, 한국농어민신문 2810호, 2016년 4월 19일자)


박기윤 선생님의 말처럼 어디에 사느냐 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누가 살고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생태적인 삶이란, 내 일상의 순간순간 어떻게 하고 사느냐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지 공간의 차이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니... 내 착각과 기대는 이미 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농촌에서 살고 싶으니 내 고민은 좀 더 깊어졌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다고 그러니 바꾸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모른척 할 수도 없는 이웃들과 이 생태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산너머 산이다.   




<엄마, 나 시골 살래요>, 이야기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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