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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Dec 10. 2016

잘 도착했어요

#1일차_막막할 땐 시스템에 의존하자. 입학.


엄마!

전 순창에 잘 도착했어요. 순창은 전라북도지만 전라북도의 가장 남쪽, 전라남도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주보다는 광주에 더 가까운 편이라 광주를 통해 순창으로 왔어요. 대구에서 광주는 2시간 반, 광주에서 순창은 30분이 걸렸어요. 물론! 제가 교육받는 장소는 순창에서도 **면이라는 곳이라서 순창읍 버스 정류장에서 또 시내버스를 타고 들어가야하는 위치이긴 해요.


귀농귀촌센터가 있는 **면소재지에 도착했는데 좀 놀랐어요. 학교가 열리는 귀농귀촌지원센터는 소위 면소재지 중심가의 상징물인 면사무소와 보건소 맞은편에 있어요. 그런데 이 주변에는 초등학교, 우체국 그리고 저녁 6시도 전에 문을 닫는 작은 하나로마트와 백반집 하나 그리고 70년대 세트장에서 옮겨 온 듯한 이용원 하나가 전부인거예요.


'여긴 면소재지가 아니라 거의 리 수준인데? 여기서 6주를 어떻게 견디지?'

하는 걱정이 덜컥 들긴 했어요.


입소식이 열리는 오후 2시가 되기 15분전... 센터 마당에 들어선 배낭 맨 나를 발견한 한 남성분이,

"교육 오신거죠? 교육은 2층에서 시작해요.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하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안내를 해 주셔서 어색하게 굳어가던 마음이 조금 풀렸어요. 2층 교육관에 올라가니 시작 행사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나더라구요. 그리고 한쪽에 가지런히 놓아져 있는 것들을 발견했죠! 낫 그리고 (일명) 냉장고바지. 교육생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있고, 리본이 매어져 있는걸 보니, 웬지 교육생들을 위한 환영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흔하지 않은 입학 선물을 보고나니 괜히 낯설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얼른 사진을 찍었어요. 


'나 앞으로 이런 물건들에 친숙해져봐야 하는구나!' 



농촌생활학교 입학 선물의 품격



그렇게 입소식(?), 입학식(?)을 했어요. 순창 군청 귀농귀촌계에서 온 직원분이 순창 정책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고, 센터의 소장이 센터에 대해서도 오리엔테이션을 했죠. 아, 총 8명의 교육생이 모였어요. 남자가 4명 여자가 4명.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준 교육용 파일에 교육생들의 간단한 인적사항이 적혀있는데, 평균 나이를 계산 해 보니 42.5세. 엄마는 또 싫어 하겠지만, 내가 막내였어요 ^^;;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34살이 어느 그룹에 가서 막내가 될 수 있단게 전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어요ㅋㅋ. 최근에는 어딜가도 내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니고, 약간 처치 곤란한 존재가 되는 듯 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이 곳에선 막내생활을 하게 됐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교육관 옆에 있는 숙소 건물에 짐을 풀었어요. 숙소는 방이 총 4개고, 남녀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건물인데 인원이 비교적 적어서 2명 혹은 3명이 한 방을 사용할 수 있게 배치를 했더라구요. 전 한 명의 룸메이트가 생겼죠.


짐을 풀곤 저녁을 먹었는데, 이 곳은 6시가 저녁 시간이더라구요. 간소하고 정갈하게 준비된 채식 위주의 식사가 입에 꽤 잘 맞았어요. 아마,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빨리 생기진 않을 듯 해요. 건강한 식사를 잘 먹고 지낼 수 있을 듯 하니 걱정마세요.


아직은 사람들이 그저 낯설어서 저녁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에 동네 산책을 나갔어요. 평소에 엄마랑 매일 산책을 하는 바로 그 해질녘 시간이긴 했지만, 걷는 것은 어느 공간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이토록 다른 것이 되는 건가봐요. 새롭게만 느껴지는 풍경 속으로 들어 온 내 스스로가 그저 낯설어서 눈에 익은 것을 찾으려고 해 봤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 산책 땐, 어디서나 보이는 높게 솟은 아파트나 기업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온 지평선이 논과 밭이고, 이층 높이의 건물 조차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우리 동네에선 아스파트길을 걷건, 자전거 전용길이나 산책로을 걷건 만나게 되던 자동차들이 어찌된 일인지 면소재지를 통과하는 2차선 도로 가장자리를 걸어도 몇 대 마주치질 않었어요. 그래서 용감하게 2차선 한 가운데 노란선을 따라 걷기도 했어요. (아... 이 해방감!) 이 곳에선 정말 해가 사라지고 밤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저녁시간에는 교육생과 센터 운영자들이 모여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아... 이런 자기소개 시간 너무 불편하고 어색한데, 모두다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시간이죠. 과거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와 왜 이 교육에 오게 되었는지를 핵심적으로 소개하는 자리죠. 나는... 뭐라고 이야기 했냐구요?


"전, 서울 생활을 12년 한 뒤, 새로운 삶의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서울이 참 좋기도 했지만 전 늘... 쉽게 지쳤던 것 같아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제 방에 들어오면 늘 뭔가 맞지 않는 옷,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전 30대가 되면서 자립적인 인간이면서 의존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는 가치관을 강하게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재화나 문명으로부터는 자립해서 내 힘과 의지로 삶을 만들어가지만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자연의 순리에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어요. 그런데 막상 서울을 벗어나 뭔가 자연에 가깝고 문명에서 먼 곳을 찾다 보니, 내가 과연 농촌 시골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그런데 이 교육의 6주간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농사를 중심으로 가르쳐주지만 이 시대에 시골 살이를 잘 하는 법에 대해서도 함께 가르쳐 줄 것 같더라구요. 반농반X*라는 개념도 소개되어 있고... 이 교육을 통해 저를 실험해 보고 싶어 오게되었습니다"


반농반X : 농업을 통해 정말로 필요한 것만 채우는 작은 생활을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X)’을 동시에 추구하는 삶의 방식. 농업을 통해 식량을 지속 가능하게 자급함으로써 대량생산·운송·소비·폐기를 멀리하는 ‘순환형 사회’를 추구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주를 세상을 위해 활용한다는 새로운 생활 양식을 일컫는 개념으로 시오미 나오키의 책 <반농반X의 삶>이 대표적으로 이를 설명한다.


하고 3분 스피치를 마쳤어요.


엄마, 엄마의 걱정이나 실망의 마음이 너무 큰 것 같아서, 엄마 앞에선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내 지금 마음은 바로 이거예요. 모든 관계를 다 끊고, 무슨 도인이 되는 것 처럼 산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겠다는 뜻이 아니예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덕분에 아는 분들 중에 농부들이 좀 있다지만, 농사는 한 번도 지어 본 적 없는 내가 갑자기 직업을 농부로 바꾸겠다는 것도 전혀 아니구요. 그런데 분명한건 내 몸과 마음이 도시 생활을 할 때 보단, 자연 가까이에서 있을 때 더 행복하다는 거예요. 물론 이전까지 하던 일과 공부가 농촌 시골에선 잘 연결이 안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난 그런 확신이 들어요. 농촌 시골에서도 내가 평소에 관심있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더 의미있고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물론 걱정이 앞서는 엄마가 그 근거가 뭐냐고 묻는다면... 또 대답을 못하고 말겠지만요)


그러니까 엄마, 내가 이 교육을 통해서 저를 우선 실험해 볼 수 있게 기다려 주세요. 직접 경험하고 부딪혀 깨져봐야지만 이해를 하는 제가 이번 실험을 통해서 오히려 제 생각과 희망이 그저 이상적인 꿈이었을 뿐이라고 절실히 깨닫고 돌아갈지도 몰라요.


내일부턴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요. 

오늘은 이만 줄일게요.


평화 :)



<엄마, 나 시골 살래요>, 이야기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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