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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Aug 15. 2017

엄마, 나 농부로 살래요

#25일차_"부끄럽지않은 밥상"을 꿈꾸는 삶


엄마, 마침내 농촌생활학교 교육의 마지막 날이에요. 오전에는 지난 교육을 총정리하는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앞으로 5년 후를 상상하며 교육생들 각자의 계획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오전의 총정리 강의는 센터 강의실을 벗어나 읍내의 식당이자 카페인 '농부의 부엌'에서 진행됐어요. 합천 황매산에서 농사도 짓고 시도 짓는 서정홍 선생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죠. 서정홍 선생님은 2005년 합천으로의 귀농 전에는 시를 쓰는 노동자로 살다가, 이젠 시를 쓰는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분이세요. 음... 엄마는 싫어할 것 같은데, 오늘 난 서정홍 선생님의 시와 이야기를 듣다 펑펑 울고 말았어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농부의 부엌 2층 다락에 우리 모두가 둘러앉고,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제일 앞에 앉은 동기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고서 낭송을 부탁했어요. 그렇게 낭송된 시가 바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에요. 낭송되는 시 한 편 듣고, 선생님의 이야기 듣고... 그게 선생님의 강의 방식이래요. <귀천>으로 시작된 강의는 농부가 되는 것이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어요.



농부, 가난하게 사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

 

"여러분은 귀농귀촌하겠다는 용기를 낸 분들이라면서요? 대단하시네요. 농부의 삶을 선택한다는 건 스스로 가난한 삶을 선택한다는 뜻인데... 가난하게 살 수 있으시겠어요? 하하. 그런데 스스로 가난하게 산다는 건 행복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란 거 다들 잘 아시죠?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지게 되는 것이 많고 그러면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할 것도 많아지죠. 또 돈이 많다 보면 좋은 곳에 쓸 수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나쁘게 쓰는 경우도 많아져요. 거기다 환경오염도 더 하게 되죠."


엄마는 내가 '가난한 삶을 산다'는 말조차 싫어할 거란 거 잘 알아요. 사실 나도 가난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은 너무 겁나는 말이었어요. 되도록이면 부자로 살고 싶지, 가난한게 뭐가 좋겠어요. 그런데 엄마... '가난한 삶'이라는 건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거 같아요. 단지 돈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자신이 가지게 되는 물건, 지위, 명예, 관계, 욕망 등과 모두 연결되죠. 그리고 선생님이 말하는 '가난한 삶을 선택한다'는 건, 부족함에 허덕이며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 삶이 아니라, 물건, 지위, 명예, 관계, 욕망 등등을 자신이 스스로 정한 수준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삶을 뜻하는 것 같아요. 내가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를 알고 그만큼만 벌어 쓰면서 사는 방식이라면 불행해지지도 않는다는거죠.


"내 욕심을 좀 버리고 스스로 가난한게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난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엄마. 내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사는 가난한 삶을 살고 싶어 하고 있는건지, 가난하게 사는걸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지, 농부들이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건 맞는지... 좀 더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한 가지 지금도 알 수 있는건.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삶'이란건 그런 처지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게, 다른 말로는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니 어쩜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유행하는 minimal life도 비슷한거 아닐까요?)      





그러나 부끄럽지 않은 삶


선생님은 2005년 합천으로 귀농하기 전까지 도시의 노동자로 살았데요. 선생님의 대표 시집 제목이기도한 <58년 개띠>,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도시 생활을 하다,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황매산으로 들어간 거래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주된 이유는 바로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삶, 양심에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셨어요.


"지구 온난화나 이상기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좀 건강하고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죽어야 한다고도 생각하면서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어요. 기후 변화와 함께 홍수니 가뭄이 계속 일어나서 식량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하고 심지어 식량 전쟁도 운운하지만, 저 역시 농사짓는 건 내 일이 아니라며 외면하면서 도시에서 쓰레기를 만들고, 지구를 병들게 하는 일에만 동참하고 있었던거죠. 양심이 부끄러웠어요"


선생님의 이 자기 고백에 난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어요 엄마. 마치 내 마음을 설명하는 것 같았거든요. 내 맘을 계속해서 괴롭히지만 무엇이라고 정확히 말하지 못했던 그것이 바로 '양심의 부끄러움'에서 오는 갈등이었단 것을 알게 된거죠. 선생님은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하셨어요. 사람은 가난하거나 힘든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누군가를 아프게 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양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좋은 마음이 도시에 살면서 자꾸 사라지게 되더라는 거예요.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고 개인적인 환경으로 구성된 도시에서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자신이 먹고사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는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양심도 부끄러워졌다는 거예요.


아마 선생님의 이야기는...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농부로 살아가는 것만이 부끄럽지 않은 삶이라는 뜻이 아닐 거예요. 어떤 환경에서든 나의 마음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에 살든 상관없겠죠. 하지만 환경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을 때,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그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미일 거예요. 도시에서는 많은 것들이 돈으로 해결되는 생활을 하니까 오로지 돈을 목표로 하게 되기 쉽고, 자연에서 떨어져 지내니 내 소비생활이 자연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볼 기회가 적다는 것도 분명한 경향이니까요.


내 마음을 괴롭혀 왔던 것 선생님의 표현처럼, '양심에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내가 왜 도시에서의 삶에 불편함을 느꼈었는지 엄마에게 이야기할 때 내 마음을 나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늘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젠 잘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렇게 설명한다면 엄마가 좀 이해하기 쉬울까요 이젠?)


 



노동자의 삶, 농부의 삶이 존중받는 좋은 세상


선생님이 사는 마을에는 학교들이 몇 개 있데요. 매달 둘째 토요일 산골마을 6살부터 10살 아이들이 모여서 하루 종일 놀고 밥 먹고 공부하는 '강아지똥 학교'는 2008년에 시작했어요. 몇 년 후, 그 아이들이 자라 청소년들이 되자, 그들이 모일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해져 '담쟁이 인문학교'를 2014년부터 열었구요. 이 학교에는 마을의 어른들이 선생님 역할을 하면서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기보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도록 돕고 있다고 해요.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며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고 시를 쓰기도 하는 선생님은 그 시들을 엮은 시집도 내셨죠 (<시의 숲에서 길을 찾다>, 2016, 단비).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에 애정이 많 선생님은 그 아이들이 교과서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이 되는 것만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지 않게 되길 바라셨어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의사 천명이 나오는게 좋습니까? 농약 안치고 농사짓는 농부 한 명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까? 판/검사 천 명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까? 죄 안 짓고 착한 사람 한 명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까?"


라고 <부끄러운 밥상>에도 쓰셨듯이, 선생님은 평범하고 착한 노동자나 농부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정말 우리가 말하는 좋은 세상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아픈 사람을 고치는 사람만큼이나 사람들이 병들지 않게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도 중요하고,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보다는 선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더 좋은 것이 정말 맞는 사실인데...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런 가치를 가르치는 일에 소홀한 것일까요? 노동자와 농부의 삶이 의사나 판검사의 삶과 동등하게 가치 있다는 인식이 당연한 사회가 될 때, 우리 아이들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이 길을 선택해 나갈 수 있을텐데 말이죠. 



서정홍 선생님의 책들 (중 일부)
<58년 개띠>, 1995, 보리
<윗몸일으키기>, 1995, 현암사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 1996, 보리
<아내에게 미안하다>, 1999, 실천문학사
<내가 가장 착해질 때>, 2008, 나라말
<부끄럽지 않은 밥상>, 2011, 우리교육
<못난 꿈이 한데 모여> 2015, 나라말




예비 농부들의 꿈


서정홍 선생님과의 차와 시 그리고 이야기 나눔으로 채워졌던 오전 시간이 지나가고, 오후에는 8명의 교육생과 교육팀장이 모였어요. 오후 시간에는 우리 9명이 꿈꾸고 계획하는 5년 후의 내 모습을 정리해서 공유하기로 했거든요. 5년 후 내 모습이라... '난 내일의 나도 잘 모르겠는데 5년 후라니!' 좀 당황스러웠지만... 교육이 끝나가는 시점에 필요한 작업 같긴 했어요.


선배 농가에 들어가 1년 정도 일을 배운 뒤, 자신의 농사를 시작하겠다는 형님. 부모님 농사를 함께 하면서 읍내에 건강원을 열어 가공물을 생산하는 업을 해 보고 싶다는 형님. 농촌에도 사회복지사는 필요하니까, 자신의 경력을 이어 일 할 자리를 찾고 농사는 늘여가겠다는 언니. 먼저 시골살이에 적응하며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내 먹을거리를 책임질 텃밭을 하며 반농반X하겠다는 언니... 등등 각자의 계획을 말했어요. 하나 둘 계획을 발표할 때 마다, 우린 뜨겁게 박수를 쳤죠. 그 꿈이 꼭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나도 발표했냐고요? 많이 망설이고 갈팡질팡이 이어졌던 지난 6주간의 시간이었지만... 나도 발표했어요.


"6주간 참 많은 새로운 것을 배웠어요. 단순히 서울을 떠나서 농촌 시골에서 살고 싶어져서 이 교육을 신청했던건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교육이었어요.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당장 농촌으로 이사를 할 용기가 충분한건지도 의문스럽구요. 모아둔 돈이 없어서 집이나 밭은 어떻게 구할지 막막해요. 그런데 5년 후를 상상해 보라고 한거니까... 5년 후에는 그래도 시 단위가 아리나 군 단위의 농촌 마을에서 작은 집과 밭을 빌려서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농사를 업으로 삼는 농부로 살진 못하겠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먹거리 정도는 스스로 책임지는 농부로는 살고 싶어요. 이런건 다 제 꿈들이라 정말 이뤄질진 모르겠어요. 그래도 제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은 꼭 할게요. 전공을 살려서... 농촌사회에 대한 인류학적인 기록들을 남기는 일은 최대한 빨리 시작할거예요. 5년 후에 모두 농부로 만났으면 좋겠어요 :)"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서정홍 선생님은 농사를 짓기 시작 뒤 쓴 시들을 엮은 첫 시집의 제목을 <내가 가장 착해질 때>라고 지었어요. 그리고 이 시가 바로 그 제목의 시구요. 지난 6주간 대단한 농사일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매일 새벽 텃밭일을 실습 교육으로 하곤 했었어요. 처음엔 아침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어서 텃밭일이 싫었지만, 언제부턴가 텃밭일이든 선배 농가실습이든, 흙을 밟고 서서 흙을 만지게 되는게 좋았어요. 서정홍 선생님은 그 순간을 '착해지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는데, 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흙을 만지는 그 평화의 순간들을 내 삶에서 계속해서 누리면서 살고 싶어요 엄마. 

소박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밥상을 매일 마주할 수 있는 농부로 살고 싶어요 엄마.


엄마가 생각하듯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농사를 업으로 하면서 살겠다는건 아니에요. 농촌 시골마을로 이사해서 내 먹거리는 직접 키우고, 꼭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살겠다는 거예요. 이런 새롭고 무모한 삶의 방식에 도전하면서 사는 딸도 괜찮지 않아요 엄마? 엄마의 응원을 기다릴게요. 안녕~



<엄마, 나 시골 살래요>, 이야기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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