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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Aug 15. 2017

새 길을 찾는다는 것, 결국 나와 새로이 마주하는 일

#에필로그_농촌생활학교를 마치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주간의 여정이 끝이 났다. 6주간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난 너무 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쓸 수 없기도 했었다.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생겼거나, 도시 밖의 삶에 대해 궁금하지만 현실적으로 6주라는 긴 시간을 투자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내 배움을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글이 쓰고 싶었다. 그러나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스스로 귀농귀촌이 맞는 선택지인지 갈팡질팡 하게 될 때가 많았고, 이미지화되거나 환타지적으로 귀농귀촌을 다루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들을 때는 내가 그 중 한 명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에 빠져서 글을 쓰기가 두려웠다. 그러다...


'내 글이 뭐라고, 아무것도 아닌 내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한건데 이게 뭔 영향을 주겠어!'


라고 자만심을 버리고 오로지 나를 위한다는 생각이 들자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25일간의 강의록 정리를 마쳤다. 실제로 새로운 배움이 많았다. 농촌생활학교에서의 교육은 의식주와 연관되는 내 일상에 대한 것들이었지만, 그저 낯설었다. 돌이켜보면 많은 교육을 받고 살아왔지만, 내 일상을 채우는 삶의 기술을 배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번 교육은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내용들이라 정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2016년 9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총 25일차 교육을 들었었다. 그리고 나는 총 22일차 교육을 정리해 글로 남겼다. 빠진 3일차 교육도 의미 있고 알찼지만, 내가 100% 잘 표현할 재주가 아직도 부족한 영역들이라 남기지 못했다.

 

+11일차에는 농촌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 중에 하나인 나의 몸을 돌보는 침과 뜸에 대해서 배웠었다. 기본적인 우리 몸의 혈자리를 배우고 우리가 흔히 겪는 증상들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침이나 뜸을 직접 놓아도 보고 맞아도 보는 실습을 했다. 농촌에서는 주로 몸을 쓰는 일이 많기 때문에 자주 다치거나 아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병원이 가까이에 많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몸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련된 수업이었는데, 실제로 큰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요즘도 응급처치법으로 사용하곤 한다. 


+18일차와 19일차에는 순창 귀농 선배 농가들을 방문하는 수업들이었는데 특정 작물에 대해서 배운 것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내 글의 전체적인 취지와 맞지 않았기에 제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에서도 빛나는 능력 있는 여성들을 만났던 이야기나 자신만의 귀농귀촌 철학을 뚜렷이 가지고 있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3일차 강의록이 빠지긴 했지만 나는 25일간 매일 밤마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마치 고교시절 복습을 하듯이, 그날 교육의 핵심 주제를 뽑아내곤 했다. 그 핵심 주제들을 정리해 보니 이렇다.

 

1. 막막할 땐 시스템에 의지 하자

2. 나의 초심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자

3. 환경을, 다음에 올 사람들을 생각하는 배려

4. 피할 수 없는 욕망을 미뤄두지 않기

5. 가장 귀한 보물은 바로 나의, 사람의 손

6.  땀 흘리며 일할 때의 희열

7. 시작하는 생명체를 마주하는 감격

8. 느림의 가치를 체감하는 연습

9. 나에게 적당한 기술을 찾는 현명함

10. 문명의 편리함 대신 선택한 자립의 자유로움

11. 욕심을 줄이고 나의 몸과 맘을 돌보자

12. 예방 주사는 아프게 맞자

13. 창의적이고 협동적인 가치를 쫓자

14. 선배, 그 길을 먼저 가는 사람들을 만나자

15. 겸허한 자긍심으로 부르는 노동의 찬가

16. 뭐니뭐니해도 내가 재미있는 것을 찾자, 그리고 그걸 하며 살자

17. 아는 만큼 이해하게 되는 것- 지역

18. 나를 지탱시켜줄 나만의 농사 철학

19. 어디서나 각자의 몫을 찾자

20. 흙을, 자연을 믿는 기다림

21.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살아가자

22. 실패는두려우니, 힘이 되어줄 사람들을 만들자

23. 적게 그러나 나만의 것을 소유하는 습관

24. 기쁨의 순간은 오롯이, 함께 즐기자

25. '부끄럽지 않은 밥상’을 꿈꾸는 삶


이 25가지의 날별 주제를 모아 보니... 마치 귀농귀촌을 꿈꾸는 내가 갖춰야 하는 덕목들이나 노력해야 하는 행동 목록같다. 이 스물다섯가지의 지침들이 농촌 살이를 앞둔 내게는 시험 전에 요약정리 잘 된 참고서 같이 느껴진다.





나는 교육을 받으며 '성공한 귀농을 위한 농사 비법'을 알고자 했거나, '귀촌해서도 밥벌이하며 사는 법'에 힌트를 얻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도시가 아닌 도시 밖 세상에서의 삶'이라는 새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새 길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새로이 나와 마주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에 앞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맞는지, 정말 내가 이런 삶의 방식에 적응할 수 있는지, 그 환경에서 내가 행복할 것인지 등등을 매 순간 들여다보는 나날이었다. 내 삶에서 나를 새로이 마주하는 일이 필요했던 타이밍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마친 나는 녹록지 않을 새로운 내 길을 찾기에 앞서 숨을 고른다. 


새로운 길 찾기에 나선 내가 받은 두 선물, 장미꽃과 고추장. 둘 다 붉디붉어 저절로 생명력이 느껴진다. 숨 고르기가 끝나면 뛸 수 있을 것 같다.


농촌생활학교 수료식이 있던 날 받은 선물들- 장미꽃과 고추장. 



<엄마, 나 시골 살래요>, 이야기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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