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중 이야기를 혼자 다 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고찰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운동량 보존의 법칙처럼, 사람들 사이에는 '발언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듯하다. 사회생활 속에서 유독 말이 많은 이들을 만나곤 한다. 상사로서 조언을 한다는 명목으로, 또는 잔소리와 '라테는'으로 무장해 끝없이 떠드는 사람들. 이들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류재언 변호사의 《대화의 밀도》에서 말하는 '대화 폭식증' 환자들이다. 이들은 대화를 지배하며 희열을 느끼고,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는 만족감으로 욕망을 해소한다. 상대가 경청한다는 사실로 자존감을 끌어올리며, 말하고 싶은 인간의 근본적 욕구를 푼다.
대화 폭식증의 모습
이런 대화 폭식증 환자와의 대화는 쉽지 않다. 처음엔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이야기에 금세 지친다. 대화란 티키타카, 즉 주고받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상대의 주제를 쏙 빼앗아 주도권을 잡는다. 경청을 위해 대화 비율을 7:3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들은 80%, 심지어 90%로 모든 소리를 독차지한다.
예를 들어, A는 최근 여행지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세세한 묘사와 쓸데없는 디테일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즉, 클라이맥스가 언제 올지, 이 '영화'가 몇 시간짜리인지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그의 말은 장황하다. 모든 이야기가 토크쇼처럼 양념이 듬뿍 쳐져 있다. 상대가 한마디 끼어드는 것조차 어렵다. 발화 사이의 멈춤(pause)이 너무 짧다. Awkward Silence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상대가 어렵게 타이밍을 잡아 "저도 지난여름 부산에 갔었는데요"라고 말하며 0.5초라도 Pause를 가지면, 그는 어김없이 참지 못하고 끼어든다. "부산, 거기 참 좋은 곳이지. 해운대는 어떻고, 서면은 어떻고, 내가 가는 맛집은 어디인데 이모님이 어떻고 그런데 또 그 근처에 어디가 맛있고..." 이런 식이다. 노래방에서 내가 예약한 노래가 시작되어 한 소절 불렀는데 옆 친구가 마이크를 들어 더 큰 목소리로 부르는 상황이 반복된다.
대화 폭식증의 뿌리
대화 폭식증은 단순히 말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그 뿌리에는 외로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또는 침묵에 대한 불안 같은 심리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소통이 주를 이루면서(SNS나 채팅처럼 짧고 빠른 교류가 익숙해진 탓에)대면 대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낼 기회가 적어지자, 누군가를 붙잡고 '발언량'을 한꺼번에 채우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 이들은 집이나 회사 밖 삶에서 말할 상대가 없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욕구 해소가 우선시된다.
정말로 '발언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면 가족, 자녀, 부모,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도 대화를 많이 해서 전체적인 대화량은 유지하되 평균적 발언량은 낮춰보는 게 어떨까.
그들은 듣고 있을까?
이러고 보니 의문이 든다. 대화 폭식증 환자는 남의 말을 듣기는 하는 걸까? 듣기는 하겠지만, 그 내용 중 자기 에피소드와 연결할 단어만 골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상대방의 말이 잠이라도 끊기길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예전에 한 직장 상사 B가 있었다. 국가별 무기 체계와 삼국지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의 무기 지식과 삼국지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됐다. 수십 분을 듣다 못한 동료 C가 주제를 바꿔 "요즘 연애 사업은 어때?"라고 화제를 전환하며 D에게 물었다. B를 제외한 사람들이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이어지는 대화가 직전의 주제와 연관된 신변잡기적인 소재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1초의 멈춤이 있었을까? 상상 B는 연애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아무 매개체 없이 다시 주제를 180도 바꾸어 삼국지 이야기를 떠들었다. 그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정말 들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본인이 관심 없는 주제의 대화가 끝나기만 기다린 걸까? 자기가 하고 싶은 무기나 삼국지 얘기만 머릿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대화 폭식증의 다양한 얼굴
대화 폭식증은 직장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가족 모임에서 부모님이나 친척이 끝없이 자신의 추억담을 반복하거나, 친구 모임에서 한 명이 대화를 독점하는 경우도 흔하다. 온라인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줌 회의나 커뮤니티에서 특정인이 주제를 지배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에피소드를 끼워 넣는다. 이런 다양한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대화가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는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피곤할까?
모든 사람은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최대한 경청해야 어울리는 대화를 할 수 있으니, 나도 열심히 듣는다. 하지만 너무 긴 일장연설에 관심을 잃는다.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 집중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비슷한 이야기를 또 할 테니까. 그렇다면 이들은 진짜 '대화'를 하는 걸까? 아니면 욕구 해소를 위한 '청중'이 필요한 걸까? 정말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누구라도 한 번 걸리면 발언량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걸까?
나는 이들을 이해하려 애쓴다. 집이나 회사 밖 삶에서 말할 상대가 없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약간의 측은지심을 품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이런 대화는 피곤하다. 대화를 한 건지 토크쇼를 들은 건지 모를 상황. 왜 자꾸 지치는 걸까?
대화 폭식증과 마주하는 법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일 수 있다. 아니면 정중히 말해보는 방법도 있겠지. 예를 들어, "그 얘기 흥미롭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하며 인터럽트를 걸어 주도권을 되찾거나, 대화 시간을 제한하는 식으로 경계를 설정할 수 있다. 공감을 보이면서 방향을 바꾸는 기술도 유용하다: "그 맛집 얘기 정말 생생하네요! 혹시 다른 분 중에 여행지를 추천해 주실 분이 있으신가요?"라고 발언권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바뀔까 의문이다. 어디에도 풀지 못한 말하고 싶은 욕구를 풀어줘야 하나? 이미 많은 사람이 그들의 성향 때문에 피하고, 또 새로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으니 상황 자체를 피해야 할까? 이런 피곤은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대화란 무엇인가
대화의 본질은 단순한 정보교환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감하는 과정이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그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때, 우리는 연결감을 느끼고 관계가 깊어진다. 하지만 대화 폭식증은 이 본질을 왜곡한다. 한쪽이 독점하면, 공감의 흐름이 끊어지고 대화는 일방적인 정보전달로 전락한다. 이로 인해 상대는 소외감을 느끼고, 대화가 피로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화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수 있다.
좋은 대화의 힘
반대로, 좋은 대화는 티키타카가 잘 맞아 주고받기가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서로의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적절히 반응하고, 주제를 번갈아 이어갈 때. 이런 대화는 상쾌함을 준다. 피로 대신 에너지가 충전되고, 관계가 더 돈독해지며, 하루가 밝아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좋은 대화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서로를 풍요롭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과정이다.
대화에 있어 7:3의 법칙을 기억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