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출근길에서 느낀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
나 말고도......많다.
매일 아침 5시 5분, 알람이 울리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간단히 세수하고 옷을 챙겨 입는다. 5시 30분, 현관문을 나서며 아직 잠든 거리의 고요함을 느낀다. 5시 40분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차가운 아침 공기와 희미한 가로등 불빛 속, 내 머릿속이 정리되는 시간이 좋다. 낮엔 정신없다. 전화벨, 메신저 알림, 끝없는 회의, 보고서 하나 깊이 읽을 틈도 없다. 그래서 이 아침의 고요함이, 나만의 시간이 귀하다.
출근길의 사람들
엘리베이터는 늘 그렇듯 텅 비었다. 셔틀버스 정류장에 나 같은 사람들이 두어 명 서 있다. 버스엔 다섯 명쯤 탄다. 5시 50분, 회사 정문에 내리니 다른 셔틀버스에서도 스무 명이 우르르 내린다. 보안 요원이 게이트에서 출퇴근자들을 확인하고, 사업장 안엔 낙엽을 치우는 아저씨들의 블로우건 소리가 요란하다. 식당 옆 메가커피에선 세 명의 직원이 정신없이 커피를 내리고, 식당 여사님들은 아침과 테이크아웃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나보다 먼저 와서 사무실 불을 켠 동료들이 보인다.
나는 늘 나의 아침을 특별하게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뭔가 나만의 철학이 있는 양, 이른 시간에 일어나 정리의 시간을 갖고 하루를 여는 내가 대견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셔틀버스 기사님, 보안 요원, 낙엽을 치우는 아저씨, 커피숍 직원, 식당 여사님, 그리고 나보다 먼저 사무실 문을 연 동료들. 이들은 나보다 더 일찍 아침을 시작했다. 세상엔 나 말고도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공부하는 아이들
지난주 첫째 아이는 국어 논술 학원에서 봐야 할 백지시험 준비 때문에 '품사의 정의'를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20페이지 분량을 사진 찍듯 줄줄 외우는 녀석을 보면 신기하다. 일요일 저녁 6시 30분, 학원에 데려다주던 길이다. 조수석의 불을 켜고 책을 펴든 아이는 마지막 점검에 한창이다. 뭔가를 외우며 문득 옆 차를 본 아이는 '연우네 차 같은데?'라며 웃는다. 같은 학원 친구인 연우네 차를 가끔 탈 때도 있는데 번호판 앞자리와 차종이 똑같다고. 그 차의 조수석도 환히 불이 켜져 있었다.
'아빠, 쟤도 지금 품사 외우고 있나 봐'
'아들아, 너도 참 대견해. 연우도 열심히고'
늘 숙제가 많다고 투덜대던 녀석이 그 순간 피식 웃는다. 조수석 불이 밝혀진 차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 모양이다. 무난하게 시험을 통과한 아들은 뿌듯한 얼굴로 말한다.
'시험 난이도 대비 너무 많이 외웠나 싶지만, 언젠간 외운 게 도움이 되겠지?.'
이제 제법 청소년으로 성장한 녀석의 한마디였다.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해줬는지, 아니면 스스로 깨달은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들아. 너 말고도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단다.
열정적인 창업자들
아내는 아이의 수학 학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대로 된 선생님, 제대로 된 시스템을 찾기란 쉽지 않다. 최근 아내가 발견한 학원은 학원이라기보다 스타트업 같았다. 학생들의 문제 풀이 패턴과 시간을 분석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운영되는 곳이다. 선생님들은 모두 영재고, 과학고를 거쳐 서울대에 간 이들이다. 그런데 더 알아보니 이들은 단순한 선생님이 아니라 창업자였다. 아예 집을 하나 빌려서 집원들이 합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전형적인 스타트업이다. 지금까지 20여 개 서비스를 론칭하고, 투자도 받고, 앱스토어 1위도 찍은 사람들. 학원은 그중에 가장 최근 사업이다. 시스템은 마음에 들지만 선생님인지 사업자인지 창업자인지 그들의 철학에 의구심은 들어 학원을 보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나름 나는 치열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앱과 홈페이지도 론칭하고, 하드웨어 개발도 하고, 투자 공부도 하며,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그런데 반짝이는 눈빛으로 세상을 헤쳐가는 그들이 바로 옆에 또 있었다. 아내 말로는 그들의 눈이 정말 빛났다고 한다. 나도 그런 눈에 반해 투자를 하기도 했다. 사실 그런 초롱초롱한 눈은 요즘 찾아보기 드물다. 나도 만나보고 싶다. 그런 뾰족하고 단단한 사람들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니까. 내가 직접 투자를 할 수도 있고 어쩌면 투자자를 소개해주고 싶을 만큼, 그들의 열정이 부러웠다.
열정적인 사람은 나 말고도....많았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노력
세상은 나 말고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침을 여는 셔틀버스 기사님, 책을 붙들고 있는 아이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창업자들. 그들 덕분에 내 하루도 더 단단해진다. 내가 특별하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평범한 노력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 나는 조금 더 겸손해졌다. 그리고 내일 아침, 또 그들의 노력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