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웨이 '서로 자극을 주는 동료, 인재에 대한 생각'
며칠 전, 대기업에 근무하는 오랜 지인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지금 반도체 관련된 작은 조직을 맡고 있는데, "시스템" 제품 고객 지원을 담당하는 5인 팀이다. 기존 멤버 1인에 4명이 새로 합류하였다.
규모는 작지만 구성원이 워낙 뛰어나서 거의 모든 걸 구성원 각자에게 위임하고 서로 신뢰하며 일한다고 한다.
- 'J'는 오랜 경력의 개발 부서의 에이스였다. 제품 끝단을 다루는 지금 부서로 옮겨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개발 지식은 따라올 사람이 없다.
- 'L'은 생산 수율 관리와 설비 개발까지 맡았던 다재다능 마당발형. 그 역시 최근 팀에 합류했다.
- 'A'는 오랜 경력의 고객 지원 전문가. 고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아는 사람.
- 지인 '본인'은 20년 넘게 제품의 Qualification 평가를 담당해서 데이터 분석에는 자신이 있다.
- 'N'은 팀에서 유일한 현부서의 ‘경력자’. 현 업무는 3년 차지만 공정 엔지니어 출신이라 설비·공정 지식이 탄탄하다.
이 다섯 명은 경우 '2~3개월' 전에야 처음 한 팀이 됐다. 그전까지는 같은 회사 안에서도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일했다. 그런데 막상 모이자 '어벤저스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누가 모르는 걸 물으면 다른 누군가가 바로 채워 주고, 반대도 마찬가지. 고객 지원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여 현장 경험과 실무 경험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지인 말로는 '이런 뛰어난 동료들과 일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제야 알겠다.'며, 심지어 집에서 아내에게까지 자랑했다고 한다. 또 어떤 구성원은 '내 회사 생활 중 최고의 팀 구성'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즉 '돈 주고도 못 사는 조합'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인력 재배치
팀이 속한 파트는 크게 '시스템'과 '메모리' 두 축으로 나뉜다. 인원 비율은 5:5로 동일하지만 메모리 쪽은 생산량·매출 모두 압도적이라 이 모든 걸 책임지는 그룹장이 업무의 90%를 거기에 쏟아 넣으므로 인원 비율은 5:6이라 할 수 있다.
며칠 전 그룹장이 지인을 따로 불러 말했다고 한다.
'내년에 메모리 더 바빠질 거야. 지금도 벅찬데 Peak 시즌이 온다. 고객의 관심도 시스템보다 메모리에 집중돼 있고, 고객의 조직 구성도 메모리 위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신규 승인 건도 많아서…그래서 내년에는 뛰어난 머리보다는 당장 승인을 챙길 손발이 필요해요'
그래서 시스템 쪽에서 한 명 빼서 메모리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얘기였다.
노동자와 인재의 경계선
지인은 충격받았다. 인력의 재배치가 아닌 ‘손발’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조직은 사람을 재배치할 수 있다.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인재가 아니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말투, 구성원을 ‘나사못’처럼 여기는 태도가 드러난 단어라고 생각했다.
지인은 팀을 지키기 위해 말했다.
“우리 팀은 서로에게 자극을 준다.
길고 뾰족한 전문성, 넓고 다양한 현장 경험,
수많은 고객을 대하며 쌓은 노련함,
그리고 주니어답지 않은 체계적 태도까지.'
시스템 팀에도 일이 많다. 업무적 특성상 기술적 문턱이 높아 다른 이들이 꺼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일이 정신적으로 힘들다. 그러나 일이 힘든 건 문제가 아니다. 구성원이 뛰어나고 그 안에 즐거움이 있다면, 일은 그냥 하면 된다고 한다.
'크래프톤 웨이'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
요즘 내가 읽는 책이 ‘크래프톤 웨이’다.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책 속 문장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겹쳐졌다.
*노동자와 인재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대체 가능 여부입니다. 노동자는 대체가 가능합니다. 공장에서 사람 하나 빠지면 2~3일 지나 곧바로 다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재는 대체 불가능합니다. 그 사람이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그 수준으로 못 합니다. 인재는 회사가 싫어지면 회사를 나가면 끝입니다. 오히려 회사가 인재를 잃기 싫어 남아주도록 매달려야 하죠.*
지인과의 대화 속 그룹장의 ‘손발’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책이 경고하는 ‘인재를 노동자로 보는 시선’이었다. 그룹장은 조직의 효율을 위해 사람을 재배치한다고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을 도구로 보는 관점’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반면 지인의 팀은 서로를 자극하고, 채워주고, 성장시키는 관계였다.
크래프톤 웨이가 말하는 ‘좋은 문화를 가진 조직’,
‘나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동료’가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실력을 보고 채용하고 싶다는 유혹은 크지만, 결국 좋은 게임을 만드는 건 좋은 문화와 사람이다.*
*나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동료*
*좋은 동료가 구성원의 최고 선물*
지인의 팀은 그걸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손발’으로만 보는 리더 아래 있다면?
인재는 떠난다.
그리고 떠난 뒤에야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된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지인은 이미 조직장과의 면담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1. 감정은 숨기고, 사실과 비전을 말하라
“메모리가 중요하다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시스템팀의 현재 구성은 '단순 인력'이
아니라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역량'입니다.
한 명을 빼면 단기적 손발은 채워질지 몰라도,
장기적 신뢰성과 고객 만족도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 데이터와 사례를 준비해서 말하라. 감정은 배제.
2. 대안을 제시하라
“메모리 지원을 늘리되, 시스템 팀은 그대로 유지하고 외부 인력 충원이나 휴 복직자의 전환 배치 또는 업무 프로세스 개선(RPA, 자동화 등)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 단순 반대가 아닌, '문제 해결자'로 보이게.
3. 팀의 가치를 조직에 알리라
지금까지의 성과(고객 만족도, 문제 해결 사례)를 정리해 ‘이 팀이 왜 특별한가’를 상부에 보고하라. 인재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인정받는다.
4. 최후의 선택지 : 떠날 준비를 하라
만약 리더의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인재는 떠난다. 지인은 이미 “돈 주고도 못 사는 팀”을 경험했다. 그 가치를 아는 곳이라면, 언제든 환영받을 사람이다. 이직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테스트해 보라.
마무리하며
지인의 이야기는 나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리더 아래서 일하고 있는가?”
“내 팀은 인재로 대우받고 있는가?”
크래프톤 웨이를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인재는 노동자가 아니다.
자극을 주고, 성장시키는 동료와 함께할 때,
진짜 성과는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