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신생아 중환자실로의 첫 면회
출산 2일 차. 친정엄마와 둘이 있던 고요한 병실에 외삼촌 내외와 이모 내외가 방문하셨다. 내 소식을 듣고 오는 데만 5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한 걸음에 달려와 주신 거다. 반갑고 고맙기도 했지만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셨는데 아기 얼굴도 못 보시고…”
“아니야, 괜찮다. 너 얼굴 보러 왔지. 아기는 다음에 건강하게 퇴원해서 또 보면 돼.”
나는 모모의 사진을 보여드리며 똘망똘망 귀여운 얼굴이며 어제 엄마 목소리 듣고 눈을 뜬 일 등을 자랑했다. 나야 모모아빠가 보내준 사진을 하도 봐서 익숙했지만, 이모는 여기저기 주렁주렁 호스를 꽂고 있는 모모의 모습에 놀란 듯 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기색을 얼른 감추고 “그래, 참 똘똘하게 생겼네.” 하고 말해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 타이밍 늦은 대답이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왔다. 나는 나의 상태가 굉장히 많이 호전되었다는 사실을 어필하며, 언제쯤 면회를 갈 수 있을지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상태 몇 가지를 체크하고는, 사실 무리이긴 하지만 내가 어떤 심정일지 알기 때문에 ‘산모 분만 괜찮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오늘 저녁 외출을 허락해 주겠다고 했다.
저녁이 되어 나는 들뜬 마음으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배에는 복대를 단단히 둘렀다. 이모 내외와 외삼촌 내외는 내가 다녀올 때까지 가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모모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겨우 차에 올랐다. 사실 무리였다. 차에 앉는 일부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온몸으로 전해지는 진동에 눈이 저절로 질끈 감겼다. 제발 살살 가 달라는 나의 부탁에 모모아빠는 속도를 줄이고 또 줄이다가 나를 태우고 제 속도로 갈 수 없음을 깨닫고 아예 비상깜빡이를 켜고 시속 20km로 거북이 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도로에 작은 요철이라도 있으면 나는 배로 가는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손잡이를 움켜잡고 매달렸다.
대학병원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버티는데 이미 체력을 완전히 소모한 후라 모모아빠가 휠체어를 빌려와서 휠체어에 앉은 채 신생아 중환자실까지 이동했다.
너무 천천히 가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아직 면회시간 전이었다.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는 우리처럼 파란 방문객 명찰을 걸고, 손에는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연두색 가방을 든 엄마 아빠들이 앉아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서 나만 뭔가 유난 떠는 기분이 들어 머쓱했다. 나는 휠체어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손을 씻고 비닐 앞치마를 입었다.
7시가 되자 자동문이 열렸다. 모모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자마자 바로 “ooo(내 이름) 아기”라고 적힌 침대에 놓인 모모가 보였다. 알몸으로 아주 작은 보라색 비니를 쓰고, 신생아용 기저귀마저도 커서 잔뜩 접어 입혀 놓은 모모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작디작은 인형 같았다.
“세상에... 너무 작아...”
이게 모모를 본 나의 첫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