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상처투성이, 나의 아기
나는 모모를 품고 아주 평온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배가 몹시 아팠고, 잠시 자고 일어나니 열 달 동안 나와 한 몸으로 있던 내 배 속의 모모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로부터 꼬박 두 밤이 지나서야 다시 모모를 만나게 되었다. 2주 같은 두 밤이었다.
하지만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던 그때 나는 사실 모모를 다시 만나러 왔다기보다는 내가 아기를 잃어버려서 대신 누군가가 주는 아기를 받으러 가는 느낌이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모모. 그동안 사진으로만 봐서 크기가 체감되지 않았는데, 2.7kg의 모모는 정말 작디작았다. 꼭 인형이 누워있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신생아 중환자실에 놓인 다른 ‘인형’들을 둘러보았다. 내 인형처럼 침대에 누워있는 인형도 있고 투명한 상자 안에 든 인형도 있었다. 그런데 많은 인형들 중 오직 내 인형만 여기저기 망가져 있었다. 다른 인형들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나만 망가진 인형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내면의 어린 나조차, “싫어요, 나도 멀쩡한 인형으로 받을래요. 왜 내 것만 망가졌어요?” 하고 떼를 쓰면 안 된다는 것과, 그렇게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 인형은 망가졌지만 나에게 주어진 '내 것'이었다.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었다.
나는 울음을 꾹 참고 모모에게로 다가갔다.
“모모야... 엄마 왔어. 엄마가 너 보고 싶어서 약속한 것보다 빨리 왔어.”
주먹을 꼭 쥔 채 자고 있는 모모의 손가락을 펴서 내 손가락을 잡게 했다. 손이 너무 작아서 내 검지 손가락 하나도 쏙 들어가지 않았다. 채혈을 하느라 검붉게 멍이 든 두 발, 여기저기 호스가 꽂혀 있는 얼굴과 배는 아플까 봐 손도 댈 수 없었다. 모모의 옆에 놓인 기계들에서 동영상에서 배경음으로 익히 들었던 기계음이 나오고 있었고 모니터는 변화 중인 수치와 고정되어 있는 수치들로 빼곡했다.
레지던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의사 선생님이 모모의 상태를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해서 겨우 알아들은 것이라고는 어떤 수치가 처음에는 높았었는데 지금은 이만큼이고, 영양은 심장으로 연결된 혈관으로 공급 중이라는 말 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이어 간호사선생님의 설명으로 아까 대기실에서 다른 산모들이 들고 있던 연두색 가방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젖이 돌면 유축을 해서 얼려서 가져다주면 젖병으로 아기에게 먹일 것이라는 것과, 아기들이 엄마의 모유를 먹기 시작하면서 회복이 빨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였다.
순간 예전에 TV에서 봤던 캥거루 케어*를 하는 장면이 떠오름과 동시에 다시 모유수유에 대한 버리지 못한 집착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간호사에게 캥거루 케어와 직접 수유 가능 여부에 대해 물었으나 이 병원에서는 캥거루 케어를 실시하지 않고 있고, 여러 감염의 위험과 아기에게 달린 각종 기구들 때문에 직접 수유는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모유를 먹으면 모모가 더 빨리 나을 수 있다니 그나마 희소식이다.
(캥거루 케어* - 이른둥이들을 맨가슴에 안고 엄마나 아빠의 따뜻한 체온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케어 방식. 이른둥이들의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함.)
7시 30분이 되자 다른 부모들이 하나 둘 아기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모모아빠와 나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맨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우리 밖에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모모에게 인사를 했다.
“모모야, 엄마 내일 또 올게. 내일은 점심 때도 오고 저녁 때도 올게. 사랑해 모모야, 엄마 아빠 생각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내일 또 와서 우리 모모 손도 잡아주고 재밌는 얘기도 해줄게. 잘 있어, 내일 또 보자. 사랑해 모모야.”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또 하고 겨우 발걸음을 뗐다.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나오면서 나에게도 우리 모모를 살려줄 모유를 담을 연두색 보냉백이 주어졌다. 나는 그 속에 이미 모유라도 담긴 것처럼 가방을 품에 소중히 안았다.
대학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은 더욱 험난했다. 속도를 낼 수 없어 비상 깜빡이를 켜고 가고 있는데도 성질 급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고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며 지나갔다. 모모아빠와 나는 그 무례함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픈 아기를 홀로 내버려 두고 가는 중이었다. 느린 운전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아기에게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함에 대한 비난 같았다. 사라지고 싶었다. 갓길로, 더 갓길로... 그렇게 멀어지다 지금의 고통과 걱정이 없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나의 입원실로 돌아왔다. 여태껏 나를 기다려준 친척들에게 모모와의 첫 만남에 대한 기쁜 소감을 전하고(물론 '인형'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어른들은 한참 동안 더 내 손을 잡아주시고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다시 먼 길을 떠나셨다.
친척들을 배웅하고 돌아와 입원복으로 갈아입는데 아까는 미처 못 봤던 얼룩들이 입원복 가슴팍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
낮부터 몸살기운이 있길래 수술에서 회복되는 과정이려거니 했었는데 젖이 돌려고 젖몸살이 온 것이었나 보다. 데스크로 가서 젖이 도는 것 같다 얘기했더니 내 병실로 와서 확인해 주었고, 아직 출산한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고 아기가 문 것도 아닌데 엄청 빨리 젖이 돈다고 신기하다고 했다.
받아오면서도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싶었던 연두색 가방을 당장 쓰게 되었다. 비닐 포장을 뜯은 뒤 까먹고 안 가지고 가는 일이 절대 없도록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내일부터 바로 모모에게 모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고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