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뜨거웠던 아기 침대 구입기
손꼽아 기다리던 아기 침대 회사의 창고 세일 날 아침, 모모 아빠와 나는 어디 붙었는지 알 수도 없는 시골 주소 하나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달렸다. 창고 개방은 10시부터였다. 그 근처에 도착한 시각은 9:55. 그런데 분명 이 근처인 것은 확실한데,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아무리 돌아도 '아기'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공장만 가득할 뿐 가구회사 창고와 비슷해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우리는 결국 그 창고를 바로 근처에 두고 아까운 20분을 허비하고야 말았다.
결국 차에서 내려 한 공장에 들어가 가구회사 창고의 행방을 물은 뒤에야 다른 공장 뒤편에 숨어있는 입구를 발견했다. 모모 아빠와 나는 허겁지겁 차를 대고 달렸다. 내 생에 첫 오픈 런 순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직원분에게
“아저씨! 침대! 침대, 어느 쪽으로 가야 해요??” 하고 다급하게 묻고는 그분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또 냅다 달렸다.
하지만 친정부모님과 함께 온 듯한, 나와 똑같이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막달 임신부 한 명이 내가 사려고 하는 바로 그 침대를 먼저 고르고 있었다. 전부 흠집이 있는 가구라지만 그중에서도 A급, B급이 나뉘게 마련이다. 그리고 먼저 오는 사람이 제일 좋은 물건 가져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20여 분이나 지각한 우리는 그 임신부가 이것저것 꼼꼼히 들춰보며 제일 흠집 없는 침대를 여유롭게 고를 동안 속만 빠짝 빠짝 태우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1등 임신부"는 느긋하게 제일 좋은 침대를 고른 뒤 옆에 놓인 범퍼를 고르러 가서는 한 장 남은, 내가 카탈로그에서 보고 이거다 점찍어 두었던 바로 그 범퍼를 냉큼 집어 가버렸다.
'아... 길만 헤매지 않았어도 다 내 거, 아니 우리 모모 건데...'
그 순간 갑자기, 침대에만 혈안이 되어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7월 말 습한 창고 속의 무더위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창고 세일이고 뭐고 그냥 새 제품 주문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모모 아빠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골라는 보자며, '엄마로서의 경쟁'에서 지고 망연자실해 있는 나를 달랬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너무 낡고 흠집이 많은 것 같고, 왠지 아까 그 여자가 가져간 게 제일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아... 저... 그냥 새 걸로 살게요...”
잔뜩 우울한 표정으로 말하는 나에게 직원아저씨가 말했다.
“아이고, 뭐 하러 그 돈 다 주고 새 걸 사요? 이것도 조립하면 흠집난 거 잘 안 보여요. 새거 살 돈 아껴서 다른 걸 더 사세요. 범퍼도 원래 이게 세트예요. 이거 봐요, 인형도 두 개나 달려있고 얼마나 좋아요?”
내가 점찍어 두었던 범퍼가 은은한 광택이 나는 그레이 톤에 엘레강스함이 잔뜩 묻어나는 '엄마를 위한 디자인'이었다면, 아저씨가 원래 주력상품이라고 보여주는 범퍼는 나무와 달이 그려져 있고 토끼 인형과 부엉이 인형이 단추로 달려있어서 인형을 떼어서 가지고 놀 수도 있는 '아기를 위한 디자인'이었다. 남편도 “나는 아까 그것보다 이게 더 예쁜데?” 하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그곳에서 우리는 ‘두 번째로 흠집이 적은’ 아기 침대와 '차선택'이었던 범퍼를 주문했고, 그 침대에 딱 맞는 아기 이불과 깔개, 그리고 여름 내의 몇 벌을 샀다. 그렇게 사고도 새 침대 하나 가격이 안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출산을 일주일 앞두고 아기 침대가 우리 집으로 배송되었다. 가져오신 기사님이 창고에 오래 보관되었던 제품인 게 마음에 걸려서 매트리스가 놓일 상판은 새 제품으로 가져왔다고 하시며 튼튼하게 조립해 주셨다. 그리고 매직블록과 수정액으로 흠집을 닦고 가리는 방법, 토들러 침대로 변형하는 방법까지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가셨다. 정말 그때 그 직원아저씨 말씀대로 조립하고 조금 닦고 하니 흠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 침대를 시작으로 수유쿠션, 수유 의자, 수유등, 아기 동물들이 그려진 액자, 알록달록하고 각종 띠롱띠롱 소리 나는 책까지 가득 두고 나니 굉장히 훌륭한 아기방이 탄생했다.
우리 모모는 이제 이 방에서 맘마도 먹고, 잠도 자고, 엄마가 읽어주는 책도 듣고 그렇게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