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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Feb 27. 2022

흰곰과 함께 ACT 하기

지금 이 순간, 변화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창조적 절망감'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치료자와 내담자의 경험이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치료자도 내담자와 같이 고통스러운 흰곰을 쫓아내고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편한 흰곰과의 끊임없는 싸움에 갇혀서 괴로워한 경험이 있다고 전제합니다. ACT에서는 치료자와 내담자의 차이점은 ‘창조적 절망감’을 받아들이고 ‘수용’의 자세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한 경험에 있습니다.  

  ‘창조적 절망감’은 불편한 흰곰을 쫓아내기 위해 했었던 행동들이 효과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늪에 더 깊게 가라앉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과 노력들이 우리를 더 옥죄어 왔다는 점에서 ‘절망적’이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창조적’입니다. 치료자는 원치 않는 생각과 기억을 만날 때 괴로웠던 경험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내담자와의 연결감을 느낍니다. 

  상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느꼈던 무력감,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때 다시 반복되는 내담자의 좌절과 불안에서 비롯되는 자책과 회의는 치료자가 내담자와 마주 보는 것을 두렵게 합니다. 이때, 치료자가 무력감과 좌절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면서 내담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내담자도 삶에서 만나는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불편한 흰곰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없애기 위해 싸우지 않면서도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법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수용-전념 치료에서의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수업에 반응이 없는 아이들, 반복되는 생활지도에도 반 친구들과 끊임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학생, 단짝 친구들과 싸워서 혼자가 된 여자아이 등 선생님도 교실에서 불편한 흰곰을 만납니다. 흰곰이 없으면 참 좋겠지만, 흰곰이 있어도 우리는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고, 수업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아이들은 선생님에게서 자신의 일부와 싸우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수용-전념 치료의 기본 개념을 알아보면서, 교실에서 경험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피부 밖의 세상’과 ‘피부 안의 세상’이라는 두 가지 맥락에서 살아가며, ‘피부 밖의 세상’에서는 문제 해결 방식이 효과적이지만, ‘피부 안의 세상’에서 만나는 불편한 흰곰은 피하거나 억압할수록 더 자주 만나게 됨을 알았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이 정상이다.’라는 ‘정상성 가정’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행동하도록 하지만,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과 감정은 언어를 통한 문제해결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경험할 때, 이를 피하거나 없애려고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흰곰과의 싸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줬습니다. 원치 않는 감정과 생각을 억누르거나 통제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이를 다시 경험하려는 ‘자발성’이 높아졌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과 싸우는 것은 우리를 늪에 더 깊게 가라앉히며, 문제를 피하거나 없애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삶의 울타리를 좁게 한다는 것을 ‘창조적 절망감’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로 우리는 흰곰을 피하지 않고, 흰곰과 함께 ACT 할 수 있는 여유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저자 소개: 초등학교 교사로 경력은 10년이 넘어갑니다.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지내다 보면 마음이 몽당연필처럼 닳을 때가 있습니다. 초임 때는 선생님인 나만 마음이 힘든 줄 알았지만, 경력이 차면서 아이들의 마음도 선생님 때문에 몽당연필이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마음이 닳지 않고 닮을 수 있도록, 좋은 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 수용-전념 치료를 배우고 있습니다.


* 참고 도서: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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