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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Mar 01. 2022

흰곰을 가둔 우리 열기

심리적 유연성, 수용에서 출발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힘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그것들을 더 자주 경험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를 힘들게 하는 내적인 경험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심리치료들이 불안, 우울, 좌절, 실망과 같은 우리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내적인 경험들을 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없애기 위해 하는 행동이 잠깐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흰곰을 피하거나 없애는 방식으로 행동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흰곰은 더 커져서 돌아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없애거나 피하는 행동이 불편한 생각과 감정을 더 자주 경험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문제를 대하는 관점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이 나타날 때마다 피하거나 없애려는 싸움에 시간과 힘을 들일 것이 아니라, 이것들과 함께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새로운 출발의 시작입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경험은 마음에 말로 기억되며, 새로운 상황에서 과거와 비슷한 경험이 나타나면 우리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칩니다. 말이 외치는 소리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따질 겨를도 없이 도망치기만 급급하면, 지금 이 순간 선택할 수 있는 다른 행동들을 놓치게 됩니다. 이처럼 말이 외치는 소리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인지적 융합’이라고 합니다. ‘인지적 융합’은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합니다. 생각에 ‘융합’된다면, 아플 때마다 진통제를 찾았던 것처럼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피하는 ‘경험 회피’에 의존하게 됩니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진통제를 먹는다면, 당장은 아프지 않을지라도 통증에 대한 내성은 낮아집니다. 조금만 아파도,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서둘러 진통제를 찾게 되고, 진통제 없이는 어디에도 나가지 못하게 되며, 진통제를 먹는 양도 점점 늘어납니다. 진통제로 통증을 외면하면, 당장은 아프지 않을지 몰라도 진통제로 통증을 낮출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이 순간, 우리는 불편한 흰곰이 찾아왔을 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진통제로 통증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 우리에게 주는 시그널을 알아채야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통증은 몸이 어딘가 아프다고 말하는 신호로서 ‘기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도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심리적으로 ‘기능’합니다. 문제 행동이 반복되는 학생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실망, 분노, 자책과 같은 내적인 경험은 우리에게 그동안 사용한 방법이 효과가 없음을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라고 이야기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또, 그 학생과의 관계에서 발생할 스트레스에 대한 ‘생각’에 갇혀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무언가를 급하게 하지 말고,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든,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다른 행동으로 덮지 말고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은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편한 흰곰은 우리의 일부입니다. 피하거나 쫓아내려고 하면, 잠깐은 사라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커져서 돌아옵니다. ‘심리적 유연성’은 흰곰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우리를 열고, 더 좋은 것이 올 때까지 삶을 견디는 것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심리적 유연성’을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으면서,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심리적 유연성’은 ‘경험회피’에서 ‘수용’으로, ‘인지적 융합’에서 ‘탈융합’으로, ‘개념화된 과거 및 미래’에서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로, ‘개념화된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맥락으로서의 자기’로, ‘가치명료성의 부재’에서 ‘가치’로, ‘무위와 회피적인 고집’에서 ‘전념행동’으로 옮겨질 때 생겨납니다. 이 과정은 ‘수용’과 ‘탈융합’을 깨우는 마음을 여는(Open) 과정,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로 중심을 잡는 과정(Centered), 그리고 ‘가치’와 ‘전념행동’으로 스스로 정한 가치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과정(Engaged)의 3가지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마음을 여는 과정(Open)’을 경험적으로 연습해볼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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