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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Mar 09. 2022

괴물과의 줄다리기

자신의 일부와의 싸움에서 벗어나서 가치를 향해 걸어가기

  ‘마음을 여는 과정(Open)’은 ‘수용(Acceptance)’에서 출발합니다. ‘수용’은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 자기-판단,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내적인 경험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에서 도망치는 것을 ‘경험 회피(Experiential Avoidance)’라고 합니다.

 ‘불편한 감정이 문제다’라는 전제는 우리를 ‘수용’보다는 ‘경험 회피’로 행동하게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합리적인 생각으로 바꾸도록 논박하는 것처럼, 원하지 않는 감정을 경험할 때마다 생각을 바꾸는데 시간과 힘을 들이게 합니다. 생각의 내용을 바꾸는 것은 잠시 효과가 있겠지만, ‘흰곰 실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이내 더 커져서 다른 논리를 들고 돌아옵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때, 이를 없애거나 싸우려고 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일부와의 싸움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경험 회피’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닌, 문제의 일부가 됩니다. 

  ‘경험 회피’에서 ‘수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원치 않는 감정과 통제하려는 시도가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음을 깨닫고, 그 행동이 가치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함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괴물과의 줄다리기’  활동으로 ‘경험회피’에서 ‘수용’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괴물과의 줄다리기>

 1. 훌라후프를 가운데 두고, 한쪽에는 2~3명의 학생이 다른 한쪽에는 1명의 학생이 섭니다. 

 2. 한쪽에 선 2~3명의 학생은 힘이 센 괴물입니다. 다른 쪽에 선 친구는 자기 자신입니다. 훌라후프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줄넘기로 줄다리기를 해봅니다.

 3. 훌라후프에 친구가 빠지면 역할을 바꾸어 줄다리기를 해봅니다. 한 번씩 모두 해보면 자리에 앉아 기다립니다.

 4. 훌라후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훌라후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지 않고 줄넘기를 놓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줍니다.

 8. ‘줄넘기를 놓고 줄다리기를 멈춥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괴물은 피하고 싶은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뜻한다고 알려주며, 훌라후프는 괴물과의 싸움에 갇힌 함정이라고 말해줍니다.




 ‘괴물과의 줄다리기’에 실패한 학생들에게 구덩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괴물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기 위해서 힘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줄넘기를 더 강하게 움켜쥐거나, 몸무게를 이용해야 한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줄넘기를 놓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학생들이 생각한 괴물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힘을 더 쓸 수 있는 방법을 실제로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줄 수도 있습니다.

  ‘줄넘기를 놓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처음 우리가 ‘괴물과의 줄다리기’를 한 목적을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괴물과 줄다리기를 한 이유는, 줄다리기에서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훌라후프에 빠지지 않기 위하였음을 상기시킵니다. 아이들은 훌라후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꼭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이겨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줄넘기를 내려놓습니다.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괴물은 부정적인 내적 경험이며, 줄다리기는 불편한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을 피하거나 없애기 위한 싸움입니다. 학생들은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아무리 힘을 써도 훌라후프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원치 않는 감정과 생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싸웠음에도, 어느새 훌라후프에 갇힌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때, 학생들은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이기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괴물과의 줄다리기’의 목적이 ‘훌라후프’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었음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학생들은 ‘괴물과의 줄다리기’로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피하거나 없애려는 ‘경험 회피’가 ‘가치(Values)’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괴물은 학생들이 없애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이었고, 벗어나기 위해 힘을 쓸수록 더 강한 힘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자주 그 생각을 경험했던 ‘흰곰 실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괴물은 피하려고 할수록 더 힘이 세지기 때문에 자기 자신 역할을 한 학생보다 많은 수의 학생이 괴물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훌라후프는 부정적인 생각, 자기-판단, 감정과의 싸움에 갇힌 함정을 의미합니다. 훌라후프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치’이고, 괴물과의 줄다리기는 ‘경험 회피’입니다. 괴물과의 싸움을 멈추었을 때, 훌라후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수용’을 뜻합니다. 줄넘기를 놓았을 때 괴물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벗어나 ‘가치’를 향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괴물과 싸우지 않아야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힘을 쓸 수 있었습니다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이길 수 없었던 경험은, 아이들에게 ‘창조적 절망감(Creative Hopelessness)’을 상기시킵니다. ‘경험 회피’를 위해 했던 노력들이 스스로를 가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고, 불편한 흰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치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수용'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려는 고리에 갇혀 있었음을 일깨워 주며, 자신의 일부와 이기고 지는 싸움에서 벗어나서 ’기꺼이 경험하기(Willingness)’로 행동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줍니다.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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