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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Feb 13. 2022

말보다 큰 지금 이 순간!

수용, 자발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기꺼이 경험하기(Willingness)’를 통해, 불편한 마음과 싸우는데 힘을 사용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행동하는데 힘을 사용하도록 합니다. 들인 노력에 비해 보잘것없을 것 같은 성과를 생각하면서 느끼는 나만 유난스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 처음 해보는 방식의 수업이 아이들에게 호응이 적으리라는 걱정,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아이와의 상담에 대한 부담스러움 등 교실에서 만나는 불편한 마음은 우리가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기 전에 우리를 주저하게 합니다. ‘기꺼이 경험하기’는 불편한 생각, 감정, 신체 감각, 그리고 기억을 만날까 봐 두려워서 피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불편한 마음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자신이 가치를 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교실에서 경험하는 불편한 생각, 감정, 신체 감각, 그리고 기억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불편한 마음을 만나면 우리는 문제를 피하거나 없애는 익숙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불안, 실망, 민망함, 자책과 같은 불편한 마음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기 때문이죠. ‘기꺼이 경험하기’는 ‘바보같이 힘든 것도 못 견뎌서 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거야!’라고 우리를 채찍질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발성’은 불편한 마음을 마주 볼까 두려워서 미리 피하지 말고, 불편함과 함께 충분히 머무르면서 ‘말보다 큰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마음을 포함한 전체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용’과 ‘기꺼이 경험하기’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뉴욕대학교 의과대학의 레비트 교수와 그의 동료들이 공황장애를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소개합니다. 이 실험에서 공황장애 환자들은 수용(Acceptance), 억제(Suppression) 그리고 통제(Control) 그룹으로 나뉘어 불안에 대해 각기 다르게 대처하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5.5%의 이산화탄소가 포함된 공기를 15분 동안 마시면서 불안 정도를 측정받았습니다. 실험 결과, 불안한 감정과 생각을 억누르거나 통제하려는 노력은 효과가 없었으며, 불안한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 그룹의 불안 정도가 가장 낮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불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 그룹이 불안을 통제하거나 억제한 그룹에 비해 다음 실험에 참가할 자발성이 더욱 높았습니다. 위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기꺼이 경험하기(Willingness)’는 ‘피부 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 기억, 그리고 신체 감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또, ‘기꺼이 경험하기’는 가치를 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피해왔던 행동들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불편한 마음이 나타나더라도 피하지 말고 마주하면서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은 불편한 마음을 깨울 수 있습니다. 이때,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통제하거나 피하려고 행동한다면 우리는 불편한 마음과 함께 있는 가치를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 있고, 지금 이 순간엔 불편한 마음도 함께 있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밀어낸 만큼 가치도 멀어지고 지금 이 순간은 작아집니다.


* 참고 도서: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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