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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Feb 11. 2022

말을 먹고 자라는 흰곰

'피부 안의 세상'과 '피부 밖의 세상'의 맥락을 구별하기

  교실에서 만나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과 관련된 문제 상황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큰 효과가 있지 않다는 것을 ‘흰곰 실험’으로 알았습니다. 불편한 흰곰을 만나지 않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경험 회피’로 기능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을 ‘흰곰과의 씨름에서 벗어나기’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할수록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는 새로운 사실은, 무엇이 우리를 ‘문제를 피하거나 없애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지 궁금하게 합니다.

  ‘피부 안의 세상’과 ‘피부 밖의 세상’의 맥락을 분별하는 연습을 떠올려 봅니다. ‘피부 밖의 세상’에서 발생하는 상황은 낙서를 깨끗하게 지우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지만, ‘피부 안의 세상’에서는 억누르거나 피할수록 문제를 더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피부 밖의 세상’에서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문제 해결방법’을 ‘피부 안의 세상’에 적용했기 때문에 더 자주 흰곰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언어로 ‘피부 밖의 세상’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언어를 통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며, 주변 사물들을 관련 지음으로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언어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지금이 아닌 과거와 미래에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문제를 없애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언어를 통한 문제 해결방법은 ‘피부 밖의 세상’에서 효과적이며,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하지만 생각, 감정, 기억, 그리고 신체 감각이 일어나는 ‘피부 안의 세상’에서는 언어를 통한 문제 해결방법이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배울 수 있고, 주변 사물을 관련 지음으로써 새로운 해결 방법을 알려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언어의 기능은 ‘피부 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없애지 못합니다. ‘피부 밖의 세상’에서 하는 것처럼 ‘피부 안의 세상’에 언어를 통한 문제 해결방법을 적용한다면, ‘흰곰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고,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우리를 흰곰에 가둡니다. 

  언어로 마음에 저장된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지금 여기에서 그 경험과 마주하는 것을 두렵게 합니다. 또, 언어는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현재로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처럼, 언어를 통해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불편한 흰곰을 현재에 데려오면서, 흰곰을 만나지 않기 위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만 우리를 행동하게 합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이 문제다.’라는 전제는 ‘피부 안의 세상’에 ‘문제를 피하거나 없애는 방식’을 적용하도록 우리를 유인합니다.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다.’라는 정상성 가정은 불편한 흰곰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불편한 흰곰은 이유가 되고,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는 비정상이 됩니다.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다.’라는 가정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나는 비정상이야.’라는 생각으로 변하며,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외시킵니다.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다.’라는 ‘정상성 가정’과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나는 비정상이야.’라는 ‘생각’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험은 언어로 마음에 저장되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면서 ‘피부 밖의 세상’에 효과적이었던, ‘문제를 피하거나 없애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채근합니다. 말이 시키는 대로 흰곰을 피하거나 없애려고 할수록 ‘피부 안의 세상’에서 우리는 흰곰을 더욱 자주 만납니다. 그 결과,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나는 비정상이야.’라는 생각과 더욱 ‘융합(Fusion)’하게 되고, 흰곰과의 씨름에 우리를 가두어 두면서 이기는 것과 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다는 것을 잊게 합니다.

  이기고 지는 싸움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를 둘러싼 삶의 울타리가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울타리 밖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다’라는 생각을 ‘문제가 있어도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생각은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생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그대로 두고,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참고 도서: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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