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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Feb 10. 2022

흰곰과의 씨름에서 벗어나기

내 안의 흰곰과 싸우는데 쓴 시간과 힘을 지금 이 순간을 사는데 써보기

  흰곰은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고, 우리는 교실에서 다양한 흰곰을 만납니다. 흰곰은 수학 문제처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수학 문제는 아무리 어려워도 정답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지만,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학생과 학생 사이의 문제는 정답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교실 속 문제 상황들은 불편한 생각, 감정과 기억들을 데리고 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은 ‘피부 안의 세상’에 속하기 때문에 이를 억누르거나 또는 도망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라고 합리화를 하거나 '문제가 있어도 어쩔 수 없지'라고 포기하는 것도 문제를 대하는 올바른 방식은 아닙니다.

  문제를 없애기 위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문제와의 싸움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문제와의 싸움을 내려놓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합리화’ 또는 ‘포기’가 아닙니다. 문제와의 싸움을 벗어나서 지금을 살아간다는 것은 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수용(Acceptance)’입니다.

  문제와의 싸움에서 자꾸만 지다 보면, 우리는 문제를 다시 마주할 용기를 잃게 됩니다. 그 문제를 다시 마주쳤을 때 경험하게 될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그 문제를 마주 보지 못하도록 우리를 주저앉힙니다. 

 그동안 피해왔던 문제 상황에 우리를 놓아두고, 그때 일어나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바라본 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수용’입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은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흰곰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피한다고 피해지지도 억누른다고 억눌러지지 않습니다. 

  흰곰은 우리를 분명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불편한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을 피하기 위해 문제 상황과 다시 마주하지 않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아서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지 못함에 있습니다.

  ‘수용’과 반대로, 불편한 흰곰을 피하기 위해 하는 행동을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경험 회피’라고 합니다. ‘경험 회피’는 행동의 ‘내용’이 아닌 행동의 ‘기능’에 주목합니다. 흰곰을 피하기 위해 공부에 집중하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수용-전념 치료적 관점에서는 '경험 회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와 운동은 내용적으로는 긍정적인 행동이지만 기능적으로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회피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순간에, 고통을 마주 보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경험 회피’라고 정의됩니다. ‘경험 회피’는 지금 이 순간을 지웁니다.

  교사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새로운 상황들을 만납니다. 그중에는 긍정적인 경험도, 부정적인 경험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경험하는 생각과 감정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지만, 부정적인 상황에서 경험하는 생각과 감정은 우리를 다시 그 상황과 마주하는 것을 힘들게 합니다. 이때, 불편한 흰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동안 성공적이었던 행동들만 반복하게 하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놓치게 합니다.

  문제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 행동들은 문제를 겪고 있는 학생이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찾았던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방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갑니다. 특정한 행동 패턴에 갇힌 아이들은 그 행동들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외에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 방법대로 살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교사와 학생 모두 ‘경험 회피’에 갇히게 되면, 변화의 시작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지 않고, 흰곰과의 씨름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데 필요한 힘을 낭비합니다. 

  ‘경험 회피’를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용’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바꾸려거나 없애려고 하지 않고, 그동안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경험들을 피하려고 노력하거나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내려놓고 충분히 머무를 수 있다면, 싸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노출할 수 있는 자발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불안하지 않아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참고 도서: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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