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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Feb 09. 2022

정상성 가정의 파괴성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자비(compassion)’에서 알 수 있듯이,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움츠러들고 작아지는 순간 느끼는 무력감, 수치심, 불안, 그리고 실망과 같은 감정은 누구나 경험합니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학생들의 마음과 같을 수 없듯, 학생들의 마음도 선생님의 마음과 같을 수 없습니다. 사소한 갈등이 큰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 학생의 부모님에게 걸려온 전화에 주말의 평화가 깨지기도 합니다. 불편한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문제가 없는 교실은 없습니다. 

  우리 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에는, 다른 반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다른 반 선생님이 문제 학생에 대해 하소연을 했던 기억은 우리 반에서 발생한 문제에 막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다른 반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우리 반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나를 자책하는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정상이다.’라는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이 가정을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정상성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정상성 가정’은 학급경영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반이 정상이다’라는 생각은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문제가 생긴 우리 반은 ‘비정상’이 되고, 빨리 문제를 없애야 한다는 조급함에 갇히면 문제는 흰곰이 되어 버팁니다. 흰곰에만 집중해서 싸우다 보면 흰곰만 보이고 교실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흰곰과 다투느라 힘을 쓰다 보면, 아이들도 선생님도 지칩니다. 

  수업 시간에 유독 말이 많은 남자아이들이 3명 있었습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떠드는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무섭게 혼내기도 하고, 조용히 수업을 들을 때는 칭찬도 해주면서 일 년을 같이 지냈지만, 졸업을 앞두고 점점 집중을 못하고 산만해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로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해서 준비도 더 열심히 했습니다. 떨어져 앉을 수 있도록 자리 배치도 다시 했습니다. 사소한 긍정적인 행동도 칭찬을 해주는 한편, 문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혼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 때문에 다른 아이들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습니다. 수업을 할 때는 세 명의 남자아이만 보게 되고, 장난을 치거나 떠드는 행동을 할 때마다 지적을 하게 되면서 수업 분위기가 점점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아왔던 화가 폭발했습니다. 수학 시간에 자기들 할 것을 빨리 끝내 놓고 옆에 있는 사람이 방해가 될 정도로 잡담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운 뒤, 한참을 꾸짖었습니다. 화를 내면서 잔소리를 하고 있을 때, 조용히 수학 학습지를 풀고 있던 한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언제부턴가,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친 적이 없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떠드는 친구들에게만 집중을 하느라 조용히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지도, 그 아이들이 조그맣게 하던 대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세 명의 남자아이들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교사로서의 자괴감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눈을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교실에는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세 명의 친구와 그 친구들만 바라보는 선생님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수업 시간에 의식적으로 다른 아이들을 더 바라보았습니다. 반 친구들 중에는, 진지하게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활동지를 스스로 풀고 깨끗한 글씨로 노트 정리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수업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세 명의 친구들을 위한 수업이 아닌,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수업 방법도, 생활지도의 방법도 아니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세 명의 아이만 바라보고 듣던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도 바라보고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다른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분위기에 묻혀 조금씩 작아졌습니다.

  교실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선생님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문제가 없는 것이 정상이다’라는 ‘정상성 가정’에 따라 문제를 없애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대부분의 경우 선생님들은 문제에만 집중해서 문제를 없애기 위해 집중합니다. 또, 주변 선생님들과 연수에서 들은 효과적인 생활지도 방법이나 사례별로 해결방법을 제시한 학급경영 책에서 해결책을 찾아보고 우리 반에 적용해보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함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상성 가정’은 교실 속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황에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없어야 정상적인 교실이다.’라는 전제는 최선을 다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만난 교사를 무능력하고 의지가 약한 존재로 스스로를 자책하게끔 유도합니다. 그래서 문제에만 더 집중하게 하고, 그 문제가 흰곰이 되어 버티게 해서 다른 학생들을 위한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합니다. 문제와 싸우느라 지금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것이 ‘정상성 가정의 파괴성’입니다.  ‘정상성 가정의 파괴성’은 교사를 스스로 능력이 없거나 무책임한 존재로 자책하도록 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선생님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은 인간 공통의 조건이라고 하면서, 문제를 없애기 위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더라도, 그 방식이 효과가 없을 수 있음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문제를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수용-전념적 관점은 우리를 문제와 싸우는 것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이 간직한 삶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 참고 도서: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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