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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Feb 01. 2023

삶의 작은 변화 인식하기(1)

알고 있는 것을 경험할 때, 살아온 시간만큼 우리 안의 시계는 움직인다.

  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으로서의 자기(the conceptualized self)’는 스스로가 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분명한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도록 하는 ‘과정으로서의 자기(the knowing self)’는 ‘내용으로서의 자기’를 형성하기도 하고 또 변화하게도 합니다(Hayes & Smith, 2005). ‘과정으로서의 자기’는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경험하고 있는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또, 선입견에 갇혀서 보지 못한 다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판단을 바꾸게도 합니다. ‘과정으로서의 자기’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흰곰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눈앞에 있는 삶에서 일어나는 지금 이 순간의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처럼 ‘과정으로서의 자기’는 ‘피부 밖의 세상’과 ‘피부 안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으로써, ‘내용으로서의 자기’에서 거리를 두고 스스로가 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과정으로서의 자기’가 ‘내용으로서의 자기’를 바라볼 때, ‘나’는 어렴풋이 또 하나의 ‘자기’를 경험합니다. ‘과정으로서의 자기’로 ‘나’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성찰하면서 ‘내용으로서의 자기’가 형성되고 변화하는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이면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자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체스 비유에서 매일 매 순간 펼쳐지는 흰 말과 검은 말의 싸움의 승패에 관계없이 체스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시 때때 변하는 날씨에도 하늘은 그대로 있습니다. 구름과 노을이 한 때 하늘을 수놓을 순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것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와 폭설도 하늘을 지우진 못합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하늘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도 바다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체스판, 하늘, 그리고 바다가 ACT에서 이야기하는 ‘맥락으로서의 자기(the observer self or self-as-context)’이며, ‘과정으로서의 자기’가 ‘내용으로서의 자기’를 바라볼 때 어렴풋이 느껴지는 또 다른 ‘나’입니다(Luoma, Hayes, & Walser, 2012).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나’를 휩쓸어 가버릴 정도로 강한 사건을 만났을 때 그것에서 도망치거나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게임이 아무리 치열해도 끝나고 나면 체스판은 그대로 있었던 것처럼, 한순간 나를 지워버릴 것 같은 불안, 초조, 실망, 좌절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남아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 초조, 실망, 좌절이 시간이 지나면 다른 감정들에게 자리를 넘겨준다는 것은 그것들이 아프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들을 경험하는 순간이 지나갈 때까지 삶을 견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부 안의 세상’과 ‘피부 밖의 세상’에서 만나는 사건들이 한순간 우리를 압도하더라도 그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며 다시 생겨나고 없어지는 ‘맥락으로서의 자기’가 그대로 있다는 것은 그것들에게서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고 함께 머물러도 삶은 끝나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 있는 시계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만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살아온 시간만큼 우리 안에 있는 시계가 움직여야 마음에 그려지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사람들과 현재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눈앞에 있는 삶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인생은 한 번이고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후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를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삶의 대부분은 일상이고, 매 순간 우리는 일상을 위한 선택들을 해야 하며 반복된 선택들은 습관이 되고 그 습관들로 삶이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간혹, ‘과정으로서의 자기’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시계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과거와 미래에 머문 시침과 분침이 현재를 가립니다.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한 번의 행동을 한 번의 행동으로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흰곰에게 휩쓸리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또, ‘피부 안의 세상’과 ‘피부 밖의 세상’에서 만나는 사건들이 그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며 시간이 지나면 흘러가 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들고 괴로운 일을 경험할 때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쁘고 행복한 일을 경험했을 때는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매일 노을은 찾아오지만 똑같은 노을은 없는 것처럼, 일상은 반복되지만 어제와 똑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내적 경험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 Luoma, Jason B. 수용전념치료 배우기. 서울: 학지사, 2012.

  - Wilson, Kelly G. (수용전념치료에서 내담자와 치료자를 위한) 마음챙김. 서울: 학지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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