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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Feb 02. 2023

삶의 작은 변화 인식하기(2)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다시 쓰지 않아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학교에서 ‘맥락으로서의 자기’의 비유가 가장 어울리는 곳은 ‘빈 교실’입니다. 교실에서 매일 일상을 함께하던 선생님과 학생들은 일 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교실을 물려줍니다. 3월의 첫 만남부터 2월의 헤어짐까지, 온갖 사고와 사건들이 그 시간을 빽빽하게 채우지만 당연한 듯 일상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자리를 찾아 떠나고, 빈 교실만 남아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갈 또 다른 일상을 기다립니다. 마음이 녹아버릴 것 같은 달콤한 순간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감정으로 서로를 상처 내던 쓰디쓴 순간들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함께 했던 사람들은 떠나가고 빈 교실만 남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우리들은 떠나고 빈 교실만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들지 물어보면 아이들은 새삼스럽게 주위를 돌아봅니다. 학년이 바뀌면 교실을 떠날 것을 알고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매일 반복될 거라는 착각을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이 새삼스러움이 지금 이 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일깨웁니다. 흘러가 버릴 것을 알기 때문에 한 순간 나를 휩쓸고 지워버릴 것 같은 사건을 만났을 때 그것에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해주면서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줍니다.






<경험적 연습  – 빈 교실>  

 1. 교실에서 있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적어봅니다. 

 2. 가슴을 따뜻하게 적셨던 순간도 좋고, 친구와 다투거나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어서 화가 났던 순간도 좋습니다. 거짓말을 했는데 들키지 않았거나, 잘못한 행동을 했을 때 혼나지 않고 넘어간 것과 같이 친구들과 선생님은 모르는 비밀을 적어도 좋습니다.

 3. 다 적은 친구들은 차례대로 그때 느낀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을 지금 이 순간에 다시 경험하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음미해 봅시다.

 4. 충분히 음미한 친구들은 눈을 뜹니다.

 5. 이제는 종업식 혹은 졸업식이 끝나고 우리는 떠나고 남아있는 빈 교실을 떠올려봅니다. 또, 빈 교실을 채울 새로운 사람들이 함께할 일상을 그려보세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경험적 연습 - 빈 교실>은 아이들끼리 심한 갈등이 있거나 혹은 학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빈 교실’ 활동은 강한 감정 또는 생각으로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 시간에도 삶에는 그 순간의 이야기가 담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음을 일깨웁니다. 그 일깨움은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한 순간의 강렬한 내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니다. 마음속 흰곰이 속삭이는 이야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삶의 작은 변화를 가꾸어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삶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는 스스로에 대해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도록 부추깁니다(Luoma, Hayes, & Walser, 2012). 불안할 때, ‘나는 쉽게 불안해지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불안에 대한 이유를 말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봅시다. 나는 쉽게 불안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은 이유가 되고, 이유가 합리적일수록 불안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합리적인 이유는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하면서, 그 상황 안에 있는 삶의 작은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합니다. 그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불안할 만한 상황을 미리 피하게 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삶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할 수 있습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가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 속에 자신을 구속할 때 ‘맥락으로서의 자기’가 필요합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는 자신을 설명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자신을 규정지음으로써 일정한 삶의 틀로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가진 고통스러운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합니다(Willson & Kelly G, 2013).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현재 순간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해 왔던 불편한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내적 경험을 없애거나 피하려고 하는데 쓴 시간과 힘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데 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가 담지 못한 지금 이 순간의 삶의 장면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한 순간의 강렬한 불편한 흰곰을 경험하더라도 삶은 그 보다 큼을 알아차리도록 하면서, 우리가 습관적으로 해온 행동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또, 그 순간을 기꺼이 경험할 수 있는 자발성을 심어줍니다. 

 지금까지 ‘맥락으로서의 자기’가 무엇이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스스로가 쓴 이야기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삶의 작은 변화들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행동을 할 수 있는 심리적 유연성을 길러준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유연성은 ‘내용으로서의 자기’가 담지 못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도록 도와주며,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다시 쓰지 않아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불편한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나의 일부분과 싸우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와 관련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내적 경험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 Luoma, Jason B. 수용전념치료 배우기. 서울: 학지사, 2012.

  - Wilson, Kelly G. (수용전념치료에서 내담자와 치료자를 위한) 마음챙김. 서울: 학지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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