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날로그 남샘 Feb 07. 2023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1)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경험을 고통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불안, 우울, 그리고 좌절과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이 우리를 찾아올 때, 우리는 그 감정들로 정말 아프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힘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경험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을 주저하게 합니다. 용기를 내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시작했더라도,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과거 연인의 모습이 보이면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전에 인연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인연과 과거의 인연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이별의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경험을 고통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불안, 우울, 좌절과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문제라고 보고, 이들을 없애거나 통제하려고 했던 기존의 심리학적 접근들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이선영, 2017). 부정적인 생각을 합리적으로 논박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덜 불편한 감정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방식은 잠깐 고통에서 벗어나게 도와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없애거나 벗어나려고 힘을 쓸수록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데 쓸 수 있는 힘이 적어지고, 현재는 또다시 아쉬움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합리적으로 논박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덜 불편한 감정으로 바꾸는 대안으로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수용’을 제안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수용해야 함을 아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때 그것을 수용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가치와 관련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수용-전념 치료의 메시지가 때로는 ‘포기’ 또는 ‘합리화’로 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용’은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과의 싸움을 ‘포기’하거나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합리화’를 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의지와 능력의 문제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배웠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감정과 생각이 사라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Hayes & Smith, 2010). 그 생각은 불편한 감정과 생각을 경험할 때, 그것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게 합니다. 이는 불안, 우울, 그리고 좌절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때 그것들을 통제하기 전에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수용’을 ‘포기’ 또는 ‘합리화’로 오해하게 합니다.

  불편한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들을 ‘수용’한다는 것이 ‘포기’ 또는 ‘합리화’로 오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 진정으로 머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수용’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덜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으로 마음이 아프고 더 이상 삶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인식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있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마음 아프거나 후회되었던 순간을 떠올려 봅시다. 그 순간 느꼈던 불안, 부끄러움, 실망 등 나를 작게 했던 감정들을 되새긴 후 다시 눈을 뜨면, 어리석게 행동했던 자신에 대한 후회와 자책으로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나요? 과거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느라 눈앞에 있었던 변화의 가능성을 놓친 기억은 없었는지 되돌아봅시다.  

  수용-전념 치료에서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는 항상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유연해짐으로써 내담자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데 도움을 줄 때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Luoma, Hayes, & Walser, 2012).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기대로 변화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을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 유연성을 키워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이는 내적인 경험과의 싸움을 멈추고 자신이 가치를 둔 삶을 사는데 시간과 힘을 쓰라는 ‘수용-전념 치료’의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전달합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내적 경험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 Luoma, Jason B. 수용전념치료 배우기. 서울: 학지사, 2012.

  - Wilson, Kelly G. (수용전념치료에서 내담자와 치료자를 위한) 마음챙김. 서울: 학지사, 20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