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은 안도감을 주지만, 선택은 생동감을 준다.
삶의 가치는 힘든 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 힘든 순간 만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려는 행동만 반복하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 괴리감을 느낍니다. 그 괴리감은 부정적인 감정을 대하는 태도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줄다리기를 할수록 자기 자신의 가치와 멀어지기 때문에 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필요함을 일깨웁니다.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반복해 온 행동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삶에서 불안,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을 찾고, 그 순간 자신이 주로 선택해 온 행동들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 행동이 단지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거나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면, 가치를 찾는 여정에서 그 행동은 더 이상 의미를 갖기 힘이 듭니다.
경험하기 두려운 감정을 피하기 위해 해 왔던 행동들이 가치를 찾기 위한 새로운 행동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억압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적 절망감’입니다(Hayes & Strosahl, 2015). ‘창조적 절망감’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한 행동들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가치를 향한 삶의 장기적인 여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삶의 가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한 번뿐인 삶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가치를 찾고 그 가치를 실현해 가는 것은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경험은 중요합니다. 수용-전념 치료의 목표인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나만의 가치를 찾아 전념할 수 있는 심리적 유연성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내면화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창조적 절망감’은 부정적인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습관적인 행동과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생동감 있는 선택을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창조적 절망감을 경험할 수 있는 연습을 소개합니다((Hayes & Smith, 2005).
1. 요즘,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고,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써봅시다.
2.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려고 했는지 생각해 보고 해결방법에 적어봅시다.
3. 그 행동을 했을 때 기분이 나아졌는지 ‘단기 효과’에 체크해 봅시다. 또, 시간이 지났을 때 그 행동으로 얼마나 기분이 나아졌는지 ‘장기 효과’에 체크해 봅시다.
학생들이 선택한 장기 효과가 높은 행동의 공통점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과 관련된 행동을 하는 데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와 싸워서 마음이 불편할 때 용기를 내어 그 친구와 대화를 시도한 행동이 휴대폰을 보거나 노래를 듣는 것과 같이 불편한 마음을 피하려고 한 행동보다 장기적으로 마음이 더 편해졌다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학업스트레스로 마음이 불편할 때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는 것이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 응답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한 습관적인 행동들이 가치와 관련된 행동을 할 수 있는 힘과 시간을 가져갔다는 것을 인식하면 학생들은 창조적 절망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습관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오랜 시간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는 행동을 반복해 왔기 때문에 그 행동을 하지 않을 때 무엇으로 힘든 순간을 대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합니다. 이때 창조적 절망감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감정과 싸워온 익숙한 행동 패턴을 포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신, 자신의 삶의 가치가 무엇이고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창조적 절망감은 습관과 선택을 구분하는 기준점이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한 습관들이 나의 행동을 결정해 왔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동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을 경험합니다. 이때, 삶의 가치는 습관이 아닌 선택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됩니다. 삶의 가치와 관련된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습관이 주는 안도감이 아닌 선택이 주는 생동감을 느낍니다. 이 생동감은 창조적 절망감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며 새로운 가치를 찾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 Luoma, Jason B. 수용전념치료 배우기. 서울: 학지사, 2012.
- Wilson, Kelly G. (수용전념치료에서 내담자와 치료자를 위한) 마음챙김. 서울: 학지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