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BGM은 늘 준비해 둘 것

미세스 피스풀 J와 집의 시간

by 미세스 피스풀

규칙적이고 평범한 나날이 반복되다 못해 단조롭게 느껴지는 매일의 생활에도 BGM이 흐른다면,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미세스 피스풀 J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오래 기억하기로 마음먹었던 감동적인 사건(?)들도, 뒤돌아서면 새하얗게 잊고 맙니다. 온 마음으로 붙잡고 싶었던 순간들도 당연히 시간의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희미하게 퇴색되어 버리죠. 굳게 닫힌 서랍 속에서 잊힌 기억을 끄집어내는 저만의 강력한 트리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음악입니다.


그때의 공기와 분위기, 장소의 온도까지 음악은 모든 장면을 다시 불러냅니다.

그 도시와 음악

한참 오아시스 OASIS와 킨 KEANE의 음악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어요. 편집부 후배와 도쿄 출장을 갔다가 21_21 DESIGN SIGHT에 들렀습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애정하는 디자이너의 전시를 놓치고 싶지 않아 애써 시간을 만든 터라 1분 1초가 귀하고 소중했던 관람 시간이었어요. 그때 제 이어폰에서는 킨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요.


시간이 흐르고 진한 감동을 남긴 전시의 이모저모도 이미 기억 너머로 흩어졌는데, 여전히 킨의 〈Somewhere Only We Know〉를 들으면 그날의 도쿄가 다시 서늘하게 되살아납니다.


아이팟의 휠을 돌리며 킨의 음악을 들었던 오후, 미술관의 유리벽 너머로 햇살이 번지던 그 순간만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강렬한 피아노 전주를 들으며 그 장소에 있던 내가 너무 행복해서 팔뚝에 오소소 돋았던 소름의 감각이 절대 희미해지지 않아요.


여행지나 출장지에서도 저는 ‘그 도시의 음악’을 기념품으로 챙깁니다.


밀라노 출장에서는 10 꼬르소꼬모에서 포스탈 서비스 Postal Service의 CD를, 파리 출장에서는 키츠네 Kitsuné 의 전설적인 Kitsuné Maison Compilation와 레스토랑 콩 KONG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구해왔어요. 인천공항에서 올림픽대로를 따라 집으로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델리스파이스의 노래를 틀었고요. 이제는 거의 모든 음악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듣긴 하지만, 선반 한가득 쌓인 CD는 제가 경험한 도시와 시간을 오래 남겨주는 매개체라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달라도, 저는 늘 그 순간을 오래 남길 음악을 찾아왔던 것 같아요. 이런 작은 요소들이 제 생활을 좀 더 문화적으로 충만하게 만들어줍니다.


평범한 하루도 한 곡의 음악 덕분에 ‘나만의 장면’으로 남겨진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지요.

나의 인생, 나의 삶, 매일의 장면에 내가 감독이 되고 출연자가 되어 인상 깊은 장면들을 만들 수 있지요.


이런 신념으로 아이를 분만할 때 출산 가방은 대충 챙겼으면서도 분만실에서 들을 플레이리스트만큼은 미리 준비해 갔어요.

배가 아파서 끙끙거리면서도 음악을 틀어놓는 제 모습에 담당 의사는 여유가 있어 다행이라고 웃었지만 저는 대견하고 기특한 아이의 인생 첫 등장이니, 이 아이가 세상에 와서 처음 듣는 음악만큼은 제가 골라서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애써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말해주려고요.


너 태어날 때, 엄마는 Il Mondo를 들려줬단다.
비 내리던 장면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주인공처럼,
네 하루도 그렇게 밝게 켜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어.


플레이리스트 업데이트 노하우 : 라디오 듣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노트북 바탕화면에 지우지 않은 파일이 백 개 정도 있고, 메일함에 확인하지 않은 신규 메일의 숫자가 몇 천 개를 넘어가는 저이지만 플레이리스트만큼은 평소에 꾸준히 관리하고 업데이트합니다.


새로운 노래는 주로 라디오를 통해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좋아하는 주파수의 라디오는 시간 맞춰 듣기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내 귀를 사로잡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편성표를 캡처해 두거나 Soundhound 어플로 제목을 찾아서 저장해 둬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는 어쿠스틱 한 음악이 듣고 싶을 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노동요가 필요할 때 혹은 나에게 늘 레전드로 남은 음악들처럼 상황별로 나눠서 노래를 추가하고, 일러스트 커버도 삽입해요.


운전할 때 나만의 컴필레이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즐거움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오늘은,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뭐 어떻습니까 하는 마음으로) 가을에 들으면 좋은 음악들을 모아봤어요. Love Piecefull Life!


Autumn, Remembered in Sound


1. Iron & Wine – Such Great Heights

2. Anthony Lazaro – Something New

3. Fabio Concato – Fiore Di Maggio

4. TOTO – I’ll Be Over You

5. Procol Harum – A Whiter Shade of Pale

6. 2 CELLOS (feat. Zucchero) – Il Libro Dell’Amore

7. Jimmy Fontana – Il Mondo

8. KEANE – Somewhere Only We Know

9. The Chainsmokers & Coldplay – Something Just Like This

10. Cigarettes After Sex – Apocalypse



미세스 피스풀 J는,


살림과 육아, 일을 저글링 하며 하루를 굴려가는 82년생입니다. 감성을 논리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미적 직관이란 평범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나의 삶의 장면을 언어로 설계하는 일을 즐거워합니다. 인테리어 매거진의 에디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새로운 영역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