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축사 K Apr 08. 2024

체크리스트과 융통성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 융통성 있다는 말이 좋은 말일까?


"참 융통성 있는 놈이네!"


 건축사 사무소를 차리기 전만 하더라도 많이도 들었던 말이다. 칭찬이라 생각되어 뿌듯한 마음도 몇번이였다. 업무적인게 아니라 일상 생활이였다면 이정도는 내가 책임질 수 있기에 가능했고, 업무적으로 봤을 땐 책임의 대상이 직원인 내가 아닌 소장이였으며, 소장에게 의견을 구할때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많았기에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당장 이 문제를 다음 단계로 넘기는 것이 중요했지 문제의 근원적인 이유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그랬다고 하더라도 공사기간과 돈을 이유로 문제를 지적하면서 발생한 손해는 너가 책임질 거냐며 나를 잡을 듯이 달려들었을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 적도 꽤나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지레짐작하고 넘어가고 넘어갔다. 그러면 시공사도, 대부분의 건축주도 좋아했다. 내가 살 집이 아니라 팔아버리면 그만인 건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좋아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융통성 있는 놈으로 살다가 내가 건축사사무소를 차리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정의 책임은 모두 내가 받아들여야했고 내가 직접 대면하고 결정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상황들이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융통성 없는 놈으로 전락해버렸다.




→ 융통성과 체크리스트


 모든 결정권이 내게 주어지면서 잊고 있던 건축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단순하다고 생각하면 단순하겠지만 하나의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여러명과 관계를 맺어야하고 그 관계속에서 발현되는 현상들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했다.


 그러다보니 결정을 할 때마다 내게는 하나하나가 고통으로 다가왔다. 어떤 적합한 변경에 따른 결정이 필요한 것이라면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할까 하는 긍정적인 고통이겠지만, 누가봐도 문제인 것을 설계자로서 또는 감리자로서 나만 눈 감아주면 아무도 모른다라는 식의 결정을 요구할 때면 화를 주체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너무나도 다채롭기에... 최소한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판단의 근거를 바로잡고자 했다. 상황마다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체크리스트를 통해 움직여버리는 융통성 없는 놈이 되는 것이다.  


 경험이 부족하기에 융통성이 없다는 말에 어느정도 동의는 하지만 그보다 더한 이유가 있다.



→ 잦은 소송


 다행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소송이나 고발을 직접 당한 적은 없지만 최근 들어 주변 건축사들 중에 소송이나 고발을 당해  법적으로 제재를 당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졌다. 건축사, 시공사, 공무원 등 서로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풀어나가기보다는 책임을 물어 일을 해결해버리는 더 쉬운 방향을 택하기 시작했다.


 "법적으로 이렇게 하게 되어있잖아요. 그런데 안하셨잖아요. 그럼 책임을 지셔야죠"


 문제가 되기 전에는 융통성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왜 그렇게 하셨는지 따지면서 법적으로 제재를 취한다. 그렇기에 협회에서는 소송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상황마다 공식 문서를 보내서 문제를 칼같이 대하라고 말한다.  융통성을 발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그것을 마주해야하는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조금이나마 까다로운 사람(감리자)이라면 공사를 포기하겠다고 겁을 주는 사람도 많다. 주변을 돌아보면 알겠지만 공사가 멈춘 현장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돈과 관련된 이유가 대부분이겠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그 돈과 직결된 사항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소송에 휘말리고 현장에서는 죽을 것 같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에서 이럴때면 내가 사람이 아니고 AI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여러번 한다.



 →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


  법적으로 제재는 강해지지만 현장에서는 변화가 없다면 결국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소송에 휘말리고 현장에서는 죽을 것 같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다보면 이도저도 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칼같이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어느정도 대처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게 된다.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입을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문서를 조작하는 경우인데, 지금은 문서조작에 대한 책임을 많이 물어서인지 무엇때문인지 납퓸업체에서 서류를 거짓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현장에 납품되는 물건과 서류상 납품되었다는 물건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를 확인할 방도야 여럿 있었겠지만 현장과 서류가 일치하는지 확인하여 이를 제지하는 것보다는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다.

 

 나는 서류를 확인했고 서류에는 법적으로 적정한 물건을 사용했다고 했으니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문서를 조작한 사람이 책임을 물기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지금도 간혹 공사는 이걸로 할 건데 나중에 서류에는 이렇게 맞춰드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나는 더 미친듯이 현장을 확인한다. 이것만 속였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때문이다.


  


→ 각자의 역할이 다르고 책임의 소재가 다르다



"이정도는 다 괜찮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문제가 있던적이 한번도 없다"

"문제가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


 이런 말을 듣다보면 허가를 왜 받는지 의구심까지 든다. 신기한 것은 이것에 대해서 문제가 없는지 해당 허가권자(공무원)이나 협력업체 설계자 등에게 공문을 통해 문의해보겠다고 하면 그러지말라면서 태도가 급변한다. 자신들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정도는 눈감아주겠지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리잡은 것을 보면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마음이 싹 사라진다.


 국한되어 말하는 것이지만 시공자의 역할과 감리자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말그대로 시공자는 허가를 받은 도서에 맞게 시공하는 사람인 것이고 감리자는 허가를 받은 도서에 맞게 시공되었는지 감독하는 사람인데 중간에 이놈의 정, 그리고 사람의 간사한 감정을 가지고 일을 그릇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현장을 지켜보고 있으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는게 아니다. 그 노고의 존경을 표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사함을 표할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묵인해서는 안 되는것 아니겠는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더라도 현장의 여건에 따라 생각지 못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는 발생한다. 그런데 각자의 역할을 다하지는 않고 이해해주기만을 바라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기겠는가.. 정으로 일하지말고 각자 소신을 갖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 나부터 봐달라는 말이 안나오게끔 책임을 다할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리게 만드는 것처럼 ... 몇몇이 모두를 욕먹게 하는 상황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