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6년을 함께하던 200만 원짜리 중고차는 어느 날 신촌에서 충정로로 넘어가는 어느 고가길에서 깊고 하얀 연기를 마지막 숨결처럼 내뱉으며 멈췄다. 고철값도 안 나온다는 투덜거림과 함께 떠나는 렉카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집도 절도 그리고 차도 없다. 당시 나를 받아줄 친구도, 여자친구도 없었던 나는 또 영화에서 본 건 있어서 캐리어 하나만 손에 꼭 잡은 채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 노숙세계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법칙이 고스란히 적용되며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중 가장 바닥에 있는 생리적 욕구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들 말을 빌려 어쩌면 가장 그들이 본성에 가깝게, 또는 솔직하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으나 하지만 글쎄... 나는 이제 더 이상그들을 동정의 시선으로는 보지 못하겠다.
당시 서울역 노숙자들의 생활은 대략 이러했다.
그들은 '정문파' '후문파' '지하철파'로 크게 놔뉘었으며 군대처럼 조직화되어 있다. 역할과 위치 그리고 체계가 있다. 소속에 들어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해가 있을 때 그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담배나 술 구걸을 하거나 동냥을 한다. 구역침법은 곧 패싸움으로 직결된다. 구걸의 형태는 수백 가지나 있으며, 상당히 체계적이다. 가장 만만한 타깃은 군인들이나 지방에서 올라온 앳된 순진한 여학생들로 '지갑을 잃어버렸다' 등의 핑계로 교통비를 빌린 다음 모르쇠하거나 도망가는 행위가 가장 일반적이다. 밥은 나보다 잘 먹었다. 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비도 나오고, 구세군이나 채움터, 교회에서도 밥 주러 꼬박꼬박 나온다. 심지어 야식까지 나오더라. 그러니 일을 하려고 할까?
여행객이 사라지고 해가 떨어지고 밤이 찾아온다. 노숙자들은 하나 둘 지하철 화려한 광고판을 열어 자기 짐을 꺼낸 뒤 '분양받은' 자신의 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그들의 앞니는 대부분 깨져있거나 없다. '분양받지 못한' 자리에서 자다가는 구둣발이 얼굴로 날아오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벌어들인 돈이나 담배는 모아서 술로 바꾼다. 그들은 대부분 알코올중독자며, 여자 노숙자들은 충격적인데 대게 임신한 상태였다. 노숙자 쉼터는 노숙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곳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대게 재활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몇몇 노숙자들은 가출 청소년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기로 했다. 범죄를 저질러 집도 밥도 주는 감옥에 가면 오히려 땡큐이며, 대게 알코올중독자이기 때문에 감옥보다는 병원행이다. 신분이 불확실해 범죄를 저질로도 잡기 힘들다. '법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그들에게도 해당된다.
아, 각 무리의 왕초는 장애인 화장실에서 잘 수 있다. 넓고, 개인적이며 라디에이터가 놓여있으니까.
나는 물론 그들의 무리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도 원치 않았고.
이제 '집시' 타이틀을 내려놓아야 했다. 위선자의 왕좌에서 내려와야 할 때였다. 더 이상 그런 생활을 하기에는 몸도 정신도 많이 나약해져 있었고, 무엇보다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꿈이 있었다.
어렵지 않게 홍대에 보증금 500에 월세 60짜리 원룸을 하나 구한 뒤, 나는 다시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며칠 지내면서 알게 된 형이 한 명 있었다. 나보다 많이 잡아야 몇 살 위처럼 보였는데, 그 형은 지옥 같은 그곳에서도 아주 평온해 보였다. 형은 무슨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았고, 무슨 일을 겪고도 편안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날아드는 노숙자들의 구둣발에서 나를 지켜준 것도 그 형이었다.
"형. 내가 집 하나 얻었는데, 우리 거기서 같이 지내자."
"괜찮아. 난 여기가 좋다."
"왜...? 물도 잘 나오고 지붕도 있는데. 거기서 다시 시작해 보자."
형의 얼굴이 처음으로 울긋불긋해졌다.
"그냥 꺼지라고 씨발아."
그리고 중얼거렸다.
"배신당할 때 느낌이랑 참 비슷해."
형은 그 말을 끝으로 서울역 지하 구석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집으로 돌아가며 되뇌었지만 형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