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고민입니다
대학 시절, 남자 선배들이 맨날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뭐 그리 거창한 일을 벌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매일같이 모여서 대체 뭐 하나, 궁금했다. 그들은 매번 당구장 아니면 피시방에 살았다. 당구장에서는 당구를 할 테고, 피시방에서는 게임하냐는 물음에 스타크래프트를 한다고 대답했다. 단체로 해야 맛이 난다나. 상기된 얼굴로 '남자들의 세계' 운운하는 게 우스워서, 나도 한번 그 남자들의 세계 맛이나 좀 보자고 운을 띄웠다.
"그래? 그렇게 재미있다니 나도 한번 해보자."
그의 표정 위로 '무슨 여자애가…'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남자 선배를 졸졸 따라가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나 게임 망칠 일 있나. 기본 작동법도 모르는 초보자를 끼어줄 리 만무했다. 남자 선배들은 처음이니까 컴퓨터와 대결해보라며 단축키 몇 개 알려주고 기본 작동법만 설명한 뒤에 본인만의 게임 세계로 떠나버렸다.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육성 게임 몇 개 해본 게 전부인 나로서는 난해한 숙제였다. 게다가 게임이 너무 어두웠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 어딘가에 내 적이 있다니. 정찰병 하나를 보내긴 했는데, 그 아이가 죽을까 봐 걱정되었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적이 무서워서, 우선 수비에 만전을 기했다.
일꾼을 수없이 뽑고, 미네랄을 모으고 또 모으고…. 기다리다 지친 컴퓨터가 직접 몇 차례 한 무리를 끌고 다가왔다. 그때마다 완벽하게 이겼다. 역시 준비된 자에게는 승리가 따르나니. 다만 게임이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다는 작은 문제는 있었다. 남자 선배들이 게임 두어 번 진행할 때까지도 나 혼자만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컴퓨터와의 대결은 백전백승이었다. 시간은 언제나 나의 편이었으니까. 조금 자신감이 생겨서 일반 유저와도 붙어보았다. 다시 한번 일꾼을 수없이 뽑고, 미네랄을 모았다. 정찰을 가끔 보내기도 했지만 먼저 공격할 생각이 없었기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30분도 지나지 않아 대참패를 겪었다. 그 사건 이후 그 게임은 손도 대지 않았다. '진짜 재미없는 게임이네. 남자들의 세계 따위 안 들어가도 그만이다, 퉤퉤' 정신 승리하면서.
왜 졌을까. 게임 규칙도 잘 모르고 덤빈 탓이 크겠지만, 이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화투에서도 초보자가 제일 돈을 많이 딴다고 하지 않나. 게다가 컴퓨터와는 진 적이 없었다. 다만 스스로 완벽해진 뒤에 움직이려고 했기 때문에 상대를 이길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유닛도 건물도 미네랄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기 전에는 쓰지 않고 계속 모으기만 했다. 먼저 나서기를 주저했고, 상대의 정찰병 하나만 다가와도 소스라쳤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를 컴퓨터는 기다려주었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완벽주의자는 완벽해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실패한다.
<고민이 고민입니다>(하지현 저, 인플루엔셜)는 너무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런 이들에게 책은 "최선을 찾기보다 최악을 피해라"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실패할까 봐, 나중에 후회할까 봐 두려워서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어떻게든 최선의 선택을 찾아 헤매고, 끊임없이 고민만 하다가 결국 뇌에 과부화가 생겨 이도 저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럴 때는 '가장 나쁜 패 하나만 피한다'는 심정으로 일단 저질러보라고 제안한다.
처음 해보는 일은 누구나 두려워서, 좀더 완벽해졌을 때 움직이려고 한다. 게임에서 일꾼과 미네랄을 모으듯,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대책을 강구한다. 책에 따르면 이런 태도는 틀렸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수록 생산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더 많은 고민만 낳을 뿐이다.
그보다 우리는 결코 완벽해질 수도 없음을 인정하고, 언제나 '70퍼센트면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마음가짐을 품는 편이 낫다. 책에서는 이를 이른바 "저강도 탐색 모드를 켠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편집자는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직업이다. 문맥의 오류나 사실관계 오류, 심지어 단순한 오자 하나를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좀더 나은 물성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그 고민이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가 편집하고 있는 책은 세상에 나오기 힘들 것이다. 완벽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편집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반대로 편집이 신의 영역인 만큼 어느 정도의 실수는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을까. 신의 영역을 한낱 인간인 편집자들이 하고 있으니 자잘한 구멍 한두 개쯤 생기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완벽이라는 허상은 스스로는 물론 타인에게도 피해를 준다. 종종 회사에서 판매 사이즈가 크다고 판단한 책은 "무조건 이 일정에 맞추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자꾸만 저자에게 안부 전화를 (가장한 독촉 전화를) 걸게 마련이다. 내 불안한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는 저자도 존재하지만, 마감 기한 안에 원고를 넘겨주어야 하는데 어쩌면 좋으냐며 안절부절못하는 저자가 부지기수다.
한번은 무리한 일정을 지키려다가 디스크가 심해져서 병원에 치료받으러 간다는 작가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내 곤란을 덜기 위해 상대의 몸까지 아프게 만든 것이다. 이후로는 아무리 일정이 급해도 작가에게 꼭 이 말을 건넨다.
"작가님, 우리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합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요."
원고 마감 기한을 지정한 당사자이면서 병 주고 약 주는 꼴이지만, 마음만은 진심이다. 이제는 저자에게 무조건 독촉하기보다는 "출간을 조금 미루거나 편집적인 부분에서 일정을 조정할 테니 너무 무리하지 마시라"고 당부한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과 '무리하지 않는 선'이 가장 중요하다. 책 한두 권 출간하고 끝낼 수 없고, 출판 한두 해 하고 그만둘 수 없으니까. 지속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오래 책을 내려면 '완벽'이라는 허상부터 벗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