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기획 단계부터 편집자는 ‘이 책의 타깃 독자’를 설정하지만 이는 상상일 뿐, 내가 기획해 만든 책을 읽는 독자를 만날 기회는 드물다. 인터넷 서점마다 서지정보 옆에 적혀 있는 ‘판매지수’나 회사 출고부수 내역을 보고 그들의 모습을 더듬어볼 뿐이다. 그들은 내게 실체 있는 사람이 아닌 숫자로 다가온다. 종종 궁금해진다. 누가 이 책을 읽을까,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서점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서점은 편집자보다 독자와 가깝고, 좀더 광대한 책을 다룰 테니까. 서점에서 일한다면 내 책을 직접 고르는 이들의 반가운 시선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몫했다. 매일의 바쁜 나날에서 벗어나 조용히 책을 읽으며 예의 바른 손님들을 대하고,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는 낭만을 상상했다. 이 생각은 당시 서울시에서 운영하던 ‘작은 책방 꾸리는 법’ 10회 강연을 수강하는 실천으로 옮아가기도 했다. 물론 강연자이던 서점인들의 차가운 현실을 목도하고 낭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금세 깨달았지만.
아쉬웠다. 내가 결코 경험하지 못한(못할) 서점인의 일을 들여다볼 방법은 없을까. 10년차 서점인이 일과 일상의 균형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없고, 잘하고 싶고>를 들여다보았다. 서점의 일상뿐 아니라 그의 눈앞에 닿은 독자를 가늠하고,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균형 있게 배분해 일과 독서를 병행하는 멋진 서점인을 상상했다.
책을 완독한 지금, 내 상상은 곧 ‘서점이라는 낭만’ 정도였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 역시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현실은 따라주지 않고, 이에 어떻게 해서든 남은 틈들을 모으고 아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뿐이다. 직통 시내버스를 마다하고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 회사를 오가고, 잠을 줄여가면서 새벽 6시에 동네 커피숍으로 향하며, 타인과 함께하는 점심식사를 마다하고 혼밥을 즐기는 그는, 이렇게 모으고 모은 짜투리 시간을 책 읽는 데 활용한다. 그가 이렇게까지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모습이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에게서 ‘멋진 서점인’의 무언가를 그려내기는 어려웠지만, 그를 통해 독자가 책을 읽는 이유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해서 책을 읽는 이유는 자신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돕는 수단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읽으며 생각을 확장시키고,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있었다.
더불어 가정에 아이가 탄생하고, 그 아이를 위해 좀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려 노력하는 양육자의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책도, 아이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교육의 시간이다. 그에게는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포기한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았다. 두 일상 모두 소중하기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
대부분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 이는 현실이 주는 한계 때문일 경우가 다분하지만, 현실에 가로막혀 기존에 가졌던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만든다면 이는 양육자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하나만 하겠다’는 선언은 삶에서 한 가지만 배우겠다는 고백으로, 스스로를 작고 편협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누구에게나 균형은 필요하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고,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각자 다를 것이다.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돌아보고, 주어진 일에 대한 중요도를 설정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