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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r 19. 2020

회사가 날 어떻게 대할지는 내가 결정한다

만화 <송곳>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인문 출판사에 근무한 적이 있다. 파주 출판단지의 큰 틀을 잡은 입지전적인 인물이 사장인 회사였다. 입사하기 전에 사장이 직접 쓴, 회사의 역사가 담긴 책을 면접비 대신 받았다. 이렇게 명성 높은 출판사에서 일할 수 있다니, 내가 이 회사 직원이라니.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안타깝게도 애사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전 직장에서 잘 훈련받은 탓에 한 권의 책을 혼자 진행할 수 있었으나, 면접 때부터 '분야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으로 취급했고, 그에 준하는 연봉을 요구받았다. 사장 면접 때는 "다른 회사 다닌 애들은 엉덩이가 가볍고 배신 잘하는데"라는 말을 들었다.

입사 후 타 부서에 인사시킬 때 상사는 "이 친구는 출판경력 2년차이지만 분야가 다르니 신입이야"라고 못을 박았다. 회사는 내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수시로 보냈다. 그곳에서 자존감은 한없이 내려앉았다. 나는 회사를 마음껏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사장은 늘 두루뭉술하게 지시했다. 대뜸 편집부에 전화해서 "그거 어디 있나?"라고 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상사들은 신기하게도 '그거'를 찾아내 가져다드렸다. 나는 저 자리에 가면 '그거'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고개가 저어졌다.

오후 6시가 되면 편집부 막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야근 밥 시킬 분 계세요?"라고 외쳤다. 밥은 회사 근처 김밥집에서만 주문했다. 편집부 직원 열에 여덟이 야근밥을 신청했다. 당시에 나는 출퇴근으로만 네 시간씩 할애하던 관계로 야근 대신 일거리를 싸들고 다녔다.

한번은 상사인 부장이 부르더니 "집이 먼 줄은 아는데 남들 보는 눈이 있으니까 야근 좀 해"라고 압박했다. "그럼 일이 없어도 야근해요?"라고 물었지만 답변은 듣지 못했다. 이후로는 정시 퇴근에 눈치가 보이고, 야근이 늘기 시작했다. 야근밥은 김밥집에서 제일 비싼 돌솥비빔밥을 시켰다. 7,000원이었다. 야근수당도 없는데, 그거라도 먹어야 그나마 덜 억울한 것 같았다.

편집부 내 제일 직급이 높은 상사는 "요즘 애들은 금요일 6시만 되면 눈이 반짝해서 어디로 그렇게 가나 몰라" 하며 "나 때는 침낭 놓고 편집부 책상 뒤에서 잤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그럴 때면 '그럼 혼자 계속 책상 뒤에서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이 자꾸만 입 밖으로 나오려 했다.

가장 이상한 점은 수십 년 된 회사에 중간 경력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편집부에는 10년 이상 근무한 장기근속자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뿐이었다. 그러다보니 고작 2년차인 내게 자꾸 "이 팀의 허리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연봉 협상 때는 "분야가 다르므로 신입"이라더니.

고압적이고 경직된 회사가 답답해 자꾸만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무리한 요구에는 '못 해요'라고 말했고, 할 수 있을 때만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의욕은 또 넘쳐서, 시키지도 않은 기획을 하겠답시고 퇴근 후 파워블로거와 미팅을 잡기도 했다. 저자와 협의한 기획안을 상사에게 내밀었더니 "모르는 사람 인터넷에서 만나면 위험해"라는 답변을 들었다. 내 기획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럼에도 내가 상사였다면 후배 기획의 어디가 부족해서 책이 될 수 없는지 말해주었을 것 같다. 그날 이후 퇴사 전까지 그 회사에서 한 번도 기획을 시도하지 못했다.

자꾸 삐딱선을 타는 내 모습에 불안했는지 한번은 회사 동료가 나를 불러다가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던 몇몇 직원이 있었다고, 노조를 만들려던 움직임도 존재했다고 했다. 사장은 노조를 세우려던 이들을 전부 내쫓았고, 자꾸만 '아니오'를 외치는 편집부 부장을 내보내기 위해 당시 차장을 부장으로 승진시키고 모든 업무지시를 새 부장에게 내렸다고 한다. 기획도 편집도 탁월했던 전 부장은 부침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 학습효과로 결국 일이 없어도 야근하는 사람들만 남았다는 이야기였다.

모두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다가 혼자 내쫓긴 기분은 어떠했을까. 남은 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들에게도 밥벌이는 소중할 테니까. 가족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새 부장은 승진했으니 기뻤을까. 새 수장을 모시게 된 다른 이들은 이제 평화가 왔다고 좋아했을까.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용감한 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 회사는 점점 더 경직되어 "그거 어디 있어?"라고 말하면 곧바로 '그거'를 갖다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명 '사축의 장'이 되어버렸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야근하고, 사장이 던지는 낡은 기획을 책으로 만들기에 급급한 편집부. 경력자들은 이 회사가 일반적이지 않음을 눈치 채고 금방 "배신을 하니" 남는 이는 이력이 필요한 신입과 회사에 길들여진 10년 이상 경력자뿐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 대가로 사내 분위기는 점점 더 삭막해졌고, 회사는 스스로 개선할 가장 큰 기회를 놓쳤다.

회사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는 내 행동으로 결정된다. 퇴직금 포함 13분의 1로 연봉을 나누어주어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계속 13분의 1로 줄 것이고, "넌 경력이 있지만 신입이야"라는 말에 항의하지 않으면 계속 후려치기 당한다. 연봉을 13분의 1로 나누어 준다면 노동부에 신고하고, 연봉은 '이 이하는 어렵다'고 마지노선을 정해야 했다. 이렇게 나의 노동을 인정하라고 요구해야 했다. 나는 일을 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으러 들어왔지, 용돈 받으며 공부하는 게 아니니까.                                                                                    


만화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 과장은 노동상담소 고구신 소장에게 묻는다. 프랑스 회사는 노조에 우호적이라는데 왜 프랑스 회사, 프랑스인 점장이 노조를 거부하느냐고. 이 질문에 고구신 소장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라고 대답했다. '얘한테는 그래도 되니까'라고 생각한다니 얼마나 슬픈가. 내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회사와 함께할 이유는 없다.

이후에는 불합리 앞에 몇 번 더 솟아오르다가 2년여 만에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개선될 여지가 없다면 얼른 손 씻고 나오는 것도 나름의 용기라고 중얼거리면서. 파주를 떠올리면 너무도 추웠던 겨울과 절간처럼 고요했던 편집부, 늦게 도착해 퍼져버린 돌솥비빔밥과 무기력한 부장의 얼굴이 교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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