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2.
영화 <캐롤>은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함께 보았던 영화다. 일산 주엽역 롯데시네마에서 같이 이 영화를 감상한 후 나는 걸어서 백석동으로, 당신은 200번 버스를 타고 연남동으로 돌아갔다. 영화의 먹먹함 때문인지 아니면 밤이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힘들어서인지 또는 이 모든 이유에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은 그 버스 안에서 눈물을 떨구었다고 한다. 이 무렵 나 또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 자꾸만 당신을 붙잡았다. 혼자 집에 돌아가며 버스 안에서 울던 당신이 손에 잡힐 듯하다.
최근 재개봉한 영화 <캐롤>을 보러 다녀왔다. 설 당일이라 그런지 서울이 텅 비었다. 길에도 사람이 거의 없고, 문을 연 음식점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관 또한 고작 관객 일곱 명을 위해 영화를 틀어주었다. 이 쓸쓸함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떠난 캐롤과 남겨진 테레즈 가운데 누가 더 슬플까. 테레즈로부터 온 전화를 들고 종료 버튼을 누르던 캐롤의 떨리는 손가락이 기억에 남는다. 힘들어하는 나를 본다면 떠나는 당신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겠냐고 묻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 또한 자꾸만 가지 말라고 말을 거는 내 음성 앞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종료 버튼을 매만지고 있을까. 영정사진에 대고 "보고 싶어" 말 거는 나는 어쩌면 이미 끊긴 전화기를 붙들고 "I miss you"를 외치던 테레즈와 다를 바 없다.
성의 없는 누군가의 ‘잊으라’는 말에 상처받을 때도 있었다. 그 말이 꼭 ‘당신이 없던 그때로 돌아가라’는 것으로 들렸다. 이미 충만한 사랑을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조금씩 담아보려 애를 쓴다. 내가 아픈 걸 당신은 결코 바라지 않을 테니까. 캐롤은 다시 테레즈에게 돌아갔지만, 우리 사이는 그 종료 버튼 장면에서 끝맺어야 하겠지.
쓸쓸히 영화 속 멜로디를 곱씹으며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문득 이 포근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겨울옷을 입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하다. 당신을 보내고서도 이렇게 또 하나의 계절을 보냈구나. 이제는 당신 없이 계절을 하나둘 겪어내고, 혼자 영화를 보고, 웃으며 일상을 살아가고, 밥을 먹는다. 처음에는 이 무너진 가슴을 안고 어떻게 모진 세월을 견뎌가나 막막했는데,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도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사실만 배워가는 중이다. 캐롤을 떠나보낸 일상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파스텔톤 페인트로 방을 칠하던 테레즈처럼, 어디 한 군데가 텅 비어버렸다 해도 어떻게든 삶은 계속된다. 이 사실을 배운 나는 조금은 성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