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7.
오늘 낮에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당신에 관한 추억을 나누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연애와 결혼과 관련해 대화할 때 “나도 언젠가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다시는 묶이지 않겠어”라는 뼈 있는 농담을 하며 웃기도 했다. 한번은 ‘정말 당신이라는 존재가 내 곁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희미해져가는 느낌도 받았다. 한 사람을 100일쯤 그리워하면 애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일까. 열흘만 지나면 당신이 떠난 지 100일이니까.
이런 생각한 지 몇 시간 만에 이 말을 철회해야 했다. ‘이제 조금 가벼워졌을까’ 싶던 내 마음은 전부 그저 잠깐의 숨고르기일 뿐이었나 보다. 당신과 함께하던 작업을 나와 이어가고 싶다는 누군가의 제안 앞에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더니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그분에게 “지금 제 상태가…”까지만 말했는데 목소리가 잠겨서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그분에게 꺼이꺼이 우는 목소리만 들려주고 말았다. 당신을 아끼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제안을 던진 것일 텐데, 오히려 “생각나게 해서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게 만들었다. 끊긴 전화를 붙들고 더 크게 울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고 살 수 있겠나. 지금도 매일같이 당신이 그리워서 아무 글이나 끄적거리는 주제에.
나는 불행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일까. 당신을 내 불행의 원인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당신은 내 가장 찬란했던 순간의 조각이니까.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이제 내 수호천사가 된 것이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 수호천사인 당신이 내가 불행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금 내게 당신의 영향력은 그 어떤 신보다 강하다. 지금 조금 쓸쓸한 계절을 지나는 중일 뿐, 그래서 종종 눈물이 쏟아지는 것일 뿐이다. 당신이 꿋꿋하게 살라고 했으니, 그 말 때문에라도 나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의 부재를 걱정한 많은 이들이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누군가는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만나서 곁을 내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덥석 손을 잡아준다. 그들의 환대 앞에 조용히 내 몫의 밥그릇을 비운 날이 많았다. 그 환대들을 양식으로 삼아 매일 조금씩 살아내고 있다. 이들 덕분에 당신 없는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운다. 그러니 나는 불행해질 수 없다.
나와 마찬가지로 환희 형아와 리아 누나를 동시에 잃은 웅이는 매일같이 나에게 애정을 갈구한다. 종일 만져달라고, 안아달라고 조르고, 외롭다고 운다. 자려고 이불을 펴면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엉덩이를 살짝 들이민다. 혼자 남은 넓은 집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온기다. 이제 기댈 곳은 나밖에 남지 않은 이 녀석 때문에라도 나는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 여전히 울고 가끔 우울하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환대와 온기들 때문에 내 마음은 기어코 따뜻해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