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9.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틀렸다. 호랑이는 어떤지 모르지만 사람은 죽어서 상속을 남긴다. 당신의 이름으로 흩어진 돈을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다. 노인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유산을 정리해 한 은행에 남겨놓고 자동이체 같은 것들도 알뜰하게 정리해놓는다는데, 삶을 정리할 시간을 거의 가지지 못한 당신은 이 모든 것을 흩뿌려놓고 떠났다. 동사무소, 등기소, 은행 다섯 군데, 증권사 한 군데, 보험사 세 군데, 국민연금관리공단, 당신 회사, 병원 등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당신이 세상을 떠났음을 증명했고, 그 대가로 돈을 건네받았다. 그나마 호스피스 병동에서 장례 이후 절차를 자세히 설명받은 바 있고, 나라에서 만들어둔 통합 재산조회 서비스 덕분에 수월히 진행한 편임에도 매일 무언가 하나씩 놓치고 빼먹어서 헛걸음쳤다. 한껏 예민해진 시기인데다가 ‘회사 복귀 전에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마음가짐 때문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더 바빴던 것 같다.
가장 큰 난항은 등기소였다. 공동명의였던 집을 내 개인 소유로 변경해야 하는데, 필요한 서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법무사에 맡길 생각이었다. 법무사에 위임하겠다는 내 말에 엄마는 “회사도 안 나가면서 집에 혼자 있으면 뭐해. 그냥 직접 처리하지?”라고 말했다. 그 말에 쓸데없이 용기가 생겨 ‘아, 그래볼까. 요즘에는 셀프 등기도 많이 한다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곧 전문가들이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완벽주의자와 대충 수습하는 자. 나는 전자에 속한다. 문제는 완벽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충 한 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자세를 바꾸든지, 남에게 맡기든지, 다시 시도해보면 될 텐데, 실패하는 게 겁이 나서 혼자 세 번 네 번 시뮬레이션해보고 또 해본다. 셀프 등기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 창에 ‘셀프 등기’를 쳐보고 수많은 이들의 체험담을 한참 읽어보았다. 낯모르는 법무사가 준비하라는 서류를 종이에 순서대로 적어갔고, 그 리스트에 수없이 동그라미 쳐가며 점검했다. 어느 순간 ‘됐어, 이제 완벽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도 미루고 또 미루고 12월 막판까지 끌다가 결국 등기소로 향했다.
은평구 등기소가 폐업하는 바람에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걸리는 마포구 등기소까지 가야 했다. 차를 가지고 가는 방법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 두 가지를 고민하다가 대중교통을 택했다. 주차할 데가 없어서, 또는 차가 너무 막혀서 허둥대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자기계발서에서 본 ‘상대에게 부탁하려면 점심시간 이후를 이용하라’는 대목이 생각나서, 2시 반쯤 출발했다.
등기소에 도착한 시간은 3시 반쯤. 등기소 안에는 민원인들로 가득했다. 익숙하게 서류를 착착 정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 같은 초보자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등기소 안에는 셀프 등기를 돕기 위해 서류자료를 검토해주는 공무원들이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그들 중 한 사람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분 앞에 서류를 늘어놓았더니 “아, 준비를 다 해오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아마 일단 찾아와서 ‘뭐뭐 서류 떼와라’ 하면 그때부터 준비하는 이들도 많은가 보다.
둘째손가락으로 순식간에 서류를 촤르르 살펴본 그분은 “저쪽 무인발급기 보이시죠. 그중에 혼자 다르게 생긴 애 있어요. 그게 동사무소 발급기이니까 저기 가서 토지대장 떼오시고요, 지금 주신 자료 이거는 잘못 떼 오신 거거든요. 저쪽 컴퓨터 보이시죠. 저기 가서 즐겨찾기에 있는 *** 사이트 들어가서 영수증 출력해오세요. 그리고 뭐뭐 서류 작성해오세요”라며 다다다 쏟아냈다. 이때가 오후 4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구멍이 있다니. 한껏 조급해진 나는 서둘러 그 방을 빠져나와서 무인발급기로 달려가 서류를 떼었다. 난관은 지금부터였다. 컴퓨터 앞에서 줄을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인쇄가 안 되는 것이다. 아니, 왜 인쇄가 안 되지. 여기는 왜 이렇게 인쇄대기가 많지? 삭제. 삭제. 이제 내 인쇄 차례인데도 안 되네? 응? 이게 뭐야. 인쇄가 안 되는 컴퓨터입니다? 아악. 왠지 이 컴퓨터 줄이 다른 데보다 짧더라니. 당황에 당황을 더하는 상황 앞에 얼른 정신을 부여잡고 옆자리 컴퓨터에 줄을 섰다. 한 중년이 인쇄가 가능한 컴퓨터 앞에 앉아 독수리 타법으로 탄원서를 쓰고 있었다. 아, 저걸 어쩐다. 10분쯤 뒤에서 고민하다가 “저, 제가 잠깐만 컴퓨터 써도 될까요? 프린트 한 장만 하면 되는데요” 말을 걸어 겨우 프린트해왔다. 여차저차 추가 자료를 정리하고 다시 그 공무원 방 앞에 섰더니 오후 4시 반쯤. 다시 한 번 평가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 공무원은 아까와 같이 두 번째 손가락으로 서류를 휘리릭 넘기며 자료를 확인하더니 이번에는 뭐뭐 자료가 누락되었다고 말했다. 그 자료는 여기서 뗄 수 없고, 동사무소에 가야 한다고 했다. 아니, 아저씨. 아까 말했어야죠. 그러면 무인발급기 안 가고 바로 동사무소 갔을 것 아닙니까.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등기소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동사무소로 뛰어갔다. 동사무소 도착. 5시. 대기인원 17명. 속으로 혼자 제길, 제길. 6시 전에 17명을 어떻게 다 보나. 여길 또 와야 되나. 나는 무슨 배짱으로 오후 4시에 등기소를 왔을까 혼자 중얼중얼 거리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다. “뭐뭐뭐 서류 주세요.” 빠르게 읊조리고 서류를 받았다. 5시 45분. 다시 등기소로 냅다 뛰었다. 동사무소 갈 때는 내리막길이더니, 등기소로 향할 때는 오르막길이라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등기소에 도착하니 5시 58분. 이미 등기소 안에 민원인들은 전부 볼일 마치고 퇴장했다. 앞서 조언해주던 공무원 아저씨가 이미 퇴근한 상태라 옆 방 다른 공무원에게 다가갔다. 사무실 밖을 나서기 위해 막 겉옷을 챙겨 입던 그분이 “지금 내시려고요?” 하고 당황했다. 내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들은 그는 이내 자리에 다시 앉아 빠르게 서류를 훑더니, “반대편 창고 가서 내시면 돼요”라고 대답했다. 반대편 공무원에게 서류를 접수했을 때는 5시 59분. 서류를 받은 공무원은 “누락된 자료 있으면 일주일 안에 연락 갈 테고, 일주일 지났는데 연락 없으면 완료된 거니까 등기필증 찾으러 오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등기소를 빠져나오니 딱 6시가 되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 나는 그제야 시부모와 내 인감도장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분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