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28.
오늘은 당신과 헤어진 지 딱 100일 되는 날이다. 이것도 기념일이라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당신 앞에 모이기로 했다. 시부모와 엄마, 나. 넷이 수목장에 모여 당신이 평소 좋아하던 음식 몇 가지를 차려놓은 다음에 당신을 위한 위령기도를 올려주었다. 당신과 인사한 뒤에는 수목장 근처 한정식 집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푸짐한 밥상에 둘러앉은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가 끊어졌다. 시엄마는 조용히 밥을 먹다가, 울먹이다가, 다시 밥을 먹기를 반복했다. 시엄마의 얼굴이 원래 저렇게 주름으로 가득했나. 한때 내가 온몸으로 미워했던 사람, 동시에 너무나도 연민했던 사람이 폭삭 사그라진 얼굴로 꾸역꾸역 밥을 넘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작고 서러워서 울었다.
누군가가 시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히든싱어에 나온 당신 얼굴과 함께 ‘고故 이환희’라고 적혀 있는 사진을 캡쳐해 보내면서 사실인지 물었다고 한다. 전화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다 듣기 싫어서 “말하기 싫으니 끊으라”고 대답했다는 말에 물기가 가득했다. 우리의 불행이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요즘에는 모임도 잘 나가지 않으신다고 한다. 성당도 가기가 꺼려지신다고 한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종종 타인들은 어설픈 위로를 던져 당신의 부재를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끔 하니까. 나 역시 ‘고 이환희’라고 적힌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면, 사실이냐고 묻는 전화를 받는다면 ‘맞다, 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냐’고 제멋대로 쏘아 붙였을 것이다. 내가 말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위로를 못 할까요.” 가만히 듣던 시아빠가 입을 열었다. “원래 그게 제일 힘든 거야.”
시아빠는 말했다. 이제 위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으니까 더는 위로받으려 하지 말라고, 위로를 주려고 노력해보라고 말이다. 단박에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시아빠는 우리만 환희를 잃고 슬퍼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다른 이들도 얼마나 슬퍼하는지 보라고 덧붙였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는 이에게 먼저 ‘밥 먹자’고 나서고,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위로를 돌려주라고 조언해주었다. 그 말에 그간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적확한 위로들을 받기만 바라던 나날들, 남들의 위로에 점수를 매기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스스로가 무서울 정도로 한껏 가시를 내밀고 살던 100일이었다. 누군가 아무리 절실한 마음을 담아 위로를 던져도, 그것들은 내 마음의 과녁을 겨냥하지 못하고 비껴가버렸다. 몇몇 위로는 오히려 모욕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한없이 무너졌다. ‘저 사람은 왜 저런 식으로 말을 하지? 저 말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나?’, ‘나를 위한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변명 아닌가?’ 같은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당신을 잃고 싶어서 잃은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모욕을 받아야 하는가.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억울해졌다. 아마 내 마음속 말들은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났을 것이다.
이제는 안다. 타인을 위로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 어떤 이도 나를 적확하게 이해할 수 없듯이, 위로도 마찬가지다. 당연하다.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누가 나를 알고 적절한 말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상대의 말을 기다리기보다는 시아빠 말처럼 내 쪽에서 먼저 ‘괜찮다’고 말해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위로는 이해의 다른 말 같기도 하다. 언제나 나와 비슷한 입장에 서본 적 있는 이의 말은 내 마음을 관통했다. 그 위로는 한마디 말일 때도 있었고, 조용한 포옹일 때도 있었다. 어쩔 때는 그저 고개만 끄덕여주는데도 울컥거리기도 했다. 말을 아끼고 고르고 기다려주는 그 마음이 느껴지면 그제야 ‘위로받았다’그 느꼈다. 나는 매번 그런 적확한 위로를 받아놓고, 남들에게 비슷한 위로를 던진 적 있느냐 물으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맡겨놓은 듯이 위로받기를 바랐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당신을 그리는 일기를 딱 100일까지만 올리려고 했다. 처음에는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기억 때문에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지만, 나중에는 ‘잘 읽고 있다’고 말해주고 표현해주는 이들의 위로 덕분에 써내려갔다. 내가 쓴 글들이 누군가에게도 위로였기를, 내가 받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읽어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