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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r 04. 2021

우리가 서로의 마중물이 되려면

21.03.04.

어젯밤 영화 <미나리>를 봤다. 영화 시작 전에 밥을 먹다가, 서울시장 투표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퀴어 페스티벌 이야기까지 넘어갔다. ‘퀴어’라는 단어에 누군가 “그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들 자유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상대의 그 한마디에 급 흥분한 나는 다다다 몇 마디 연이어 내뱉었다. 왜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애인과 손을 잡고 길을 걸어도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데, 다른 누군가는 그 자유를 박탈당해야 하냐고 열변을 토했고, 이윽고 상대는 “아, 그렇구나. 내가 잘 몰랐어. 네 몇 마디만 들었는데도 설득되었어”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주 거칠게 싸울 기세로 날을 세웠는데 상대는 바로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고 수긍해 오히려 민망했다. 큰 싸움 없이 혐오 발언을 자제시킨 어제의 대화를 앞에 두고 ‘오, 방금 내가 세상을 조금 바꾸었나’ 자찬하고는 호기롭게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변방으로, 또 변방으로 밀려나는 이야기다. 영화 속 이민자 가족은 10년 넘게 병아리 암수를 감별하는 일을 해 돈을 벌었으나 재산이라고는 변두리에 놓인 바퀴 달린 집, 낡은 자동차, 빚을 얻어 지은 작은 농장이 전부다. 그들의 삶은 땅에 온전히 뿌리박지 못하는 그 바퀴 달린 집과 닮았다. 동시에 쓸모를 증명하지 못해 소각되어버리는 수컷 병아리와도 닮았다. 허리케인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금세 뒹굴리다가 내팽겨지는 하찮은 삶. 인간의 기준에 ‘쓸모없다’며 즉각 제거당하는 삶. 타인에게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삶.


영화 보기 직전 이야기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그 영화를 보며 나는 트랜스젠더이자 교사이자 녹색당 동지였던 고 김기홍 씨를 떠올렸다. 83년생이었다고 한다. 당신보다 한두 살 많은 나이. 당신만큼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자꾸만 변방으로 밀어내려는 이들에게 오히려 꽃처럼 해사한 웃음을 날리던 유쾌한 퀴어. 영화는 ‘양지 바른 땅에 씨만 뿌리면 알아서 잘 자라는 미나리’를 주인공들의 희망의 상징으로 삼는데, 나는 그 가족이 미나리를 보며 오히려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극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변희수 하사의 비보를 접했다. 다시 군인으로 돌아가 나라를 지키고 싶다고 울면서 거수경례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는 23세였다고 한다. 세상에. 짧아도 너무도 짧은 삶이다. 영화 보기 전 내가 바꾸었다고 자찬했던 그 세상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신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 후원처 가운데 하나인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 센터 띵동’에 후원신청서를 보낸 적 있다. 신청 사유에 ‘이환희 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원을 신청합니다’라고 적었다. 다음 날 담당 활동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가 내가 “환희 씨 뜻을 이어주고 싶어서요”라고 말했고, 그가 “네. ‘뜻을 기린다’는 표현을 보고 짐작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내 울음에 그도 함께 눈물을 터트렸고, 서둘러 전화를 내려놓는 듯했다. 짧은 통화였지만 나는 그 진심 어린 위로를 오래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당신은 이성애자인 헤테로이고 뇌종양 때문에 세상을 떠난 것이었지만, 그는 당신이 퀴어이며 다른 방식으로 떠났다고 짐작했으리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또 나와 함께 울던 그 순간 그는 이제는 먼 길을 떠나간 주변 퀴어들을 하나둘 떠올렸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의 앞에서 나의 눈물은 사치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희망’이라는 말을 하던 이가 목숨을 내버릴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변방으로, 또 변방으로 밀려나면서도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이들에게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하냐”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무섭다. 이 땅의 소수자들은 숲속에 자유롭게 씨 뿌려져 사는 미나리에게서 희망은커녕 박탈감만 느낄 것이다.


미나리가 박탈감의 상징이 아닌 희망의 증거가 되려면 우리가 그 미나리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무엇도 하지 못하고 겨우 하루를 살아냈다. 그저 클럽하우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침묵의 방(대화 없음)’에 들어가 그 침묵을 무겁게 바라보다가 나왔을 뿐이다.


떠난 이들은 부디 차별 없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그리고 남은 이들은 죽지 마시길. 우리 함께하길. 기도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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