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스타시아 Mar 14. 2021

막연한 두려움 사이로 좋은 죽음을 상상해보기

<고양이로부터 내 시체를 지키는 방법>

오전에는 죽음 이후 부활에 관해 이야기하는 성당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오후에는 <고양이로부터 내 시체를 지키는 방법>을 읽으며

죽음 이후 육체의 변화과정에 대해 공부했다.     

오전에는 부활과 영혼을 말하고, 오후에는 자연과학을 접한 기묘한 하루였다.


<고양이로부터 내 시체를 지키는 방법>은 장례지도사가

죽음과 시체에 대한 질문들을 과학에 입각해 설명해주는 청소년 도서다.

저자는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의 저자 케이틀린 도티인데,

이전 책에서도 보았던 입담을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낸다.

청소년용이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서술되었으나

죽음에 대해 무지한 건 어른도 마찬가지이니 누구나 읽어도 큰 무리 없을 듯하다.

서술은 저자가 강연장 등에서 어린아이들에게서부터 받았던 흥미로운 질문들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죽음과 시체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 편견 없이 던지는 질문들이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든다.


다만 지금 내 텐션이 죽음과 시체를 유쾌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책을

소화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것 같다. ㅜㅠ

사후경직과 화장, 시체의 부패 같은 것들을 설명할 때마다 당신이 생각나는 바람에

저자의 유쾌한 서술을 따라가며 함께 웃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장례식장 뒤편으로 사라진 당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자연으로 돌아갔는지 잠깐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당신이 들어갔던 그 용광로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왜 화장터에서 당신을 한 시간이나 태웠는지,

화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당신을 보냈다면

어떤 방식으로 부패가 일어났을지 등을 막연하게나마 그려보았다.

나 또한 나중에 어떤 방식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인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가장 가까웠던 존재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내 안에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자리 잡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하루하루를 보낸 벌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막연한 공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죽으면 내 무덤을 누가 돌봐주지’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무연고자의 무덤’이 된 자리에서 내가 흙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이를 받는다고 상상하니 막연하던 외로움이 조금 가셨다.

새로 들어오는 그 손님과 친하게 지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차별과 다양성에 맞서는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