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스타시아 Jun 08. 2021

저자도 편집자도 눈물로 만든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편집 후기

#저는삼풍생존자입니다 #출간 #편집후기

<저는 삼풍의 생존자입니다> 칼럼은 나름 유명했다. 매년 4월이면 SNS에 그 글이 떠돌아다녔고, 나 역시 한 번쯤 퍼 나른 적 있다. 읽을 때마다 ‘이분은 어쩜 글을 이렇게 쓰지’ 감탄했다. 글에 대한 감이 좋았다. 정식으로 작법을 배운 적이 없는 것은데, 적확한 단어를 적절한 곳에 잘 활용하는 감각이 있었다. 게다가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말이라서 읽을수록 배울 점도 많았다. 가장 마음을 울렸던 문장은 “슬프지 않았던 날들이 모두 행복이었다”였다. 이 글을 책으로 읽고 싶어졌다.


처음 작가님께 제안을 보냈던 장면을 기억한다. 나름 정성스럽게 메일을 보냈고, 대차게 거절당했다. 이런 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이미 몇 군데 출간제안을 받았으나 전부 거절했다고. 이해했다. 그의 글을 책으로 내고 싶은 건 업자로서의 내 욕심이다. 그분에게는 ‘불행을 전시해서 남들에게 보여달라’는 제안이 얼마나 잔인하겠나. 거절이 당연한 반응이었다. 거절당한 아쉬움보다 동료 시민으로서의 미안함이 더 컸기에 그 의견을 존중하고 싶었다.


편집자로서는 포기했으나 독자로서의 아쉬움이 남았다. 그의 말에 대답을 보냈다. 당신의 목소리에는 의미가 있다고. 최대한 당사자의 목소리가 세상에 많이 나와야 비당사자와 당사자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다고. 더불어 나와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좋은 편집자를 만나 책으로 내셨으면 좋겠다고 썼다. 사실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고 보낸 편지였고, 지금 생각하면 주제 넘는 참견이었는데, 그 메시지가 작가님에게는 하트 시그널처럼 느껴졌나 보다.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이지은 님과 책, 하고 싶어요.”


여기까지는 ‘프로페셔널한 편집자’ 느낌이지만 이후로는 그분에게 별로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첫 미팅 때 작가님을 앞에 두고 아빠 이야기를 하다가 펑펑 울었다. 일하는 자리에서 왜 죽은 아빠 이야기를 했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머, 제가 왜 이러죠” 중얼거리며 훌쩍이는 나를 가만히 보던 작가님은 “괜찮아요. 제 앞에서는 다들 울어요”라며 살며시 웃었다.


책을 만들다가 남편과 고양이가 동시에 아팠고, 동시에 떠났다. 그 때문에 휘청거리는 모습을 작가님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이 모든 상황이 창피했는데, 작가님은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했다. 어느 날 한손 가득 츄르를 들고 오셨던 기억이 난다. 두 팔로 다 안아도 넘칠 양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회사에 돌아왔다고 메일을 보냈다. 작가님은 “저자도 편집자도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죠”라고 보냈다. 그 글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지.


복귀 후 첫 미팅을 작가님 집에서 진행했다. 작가님은 책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내게 밥만 먹였다. 예쁜 접시에 쌓아올린 밀전병이 기억난다. 곱게 차린 식탁에 나를 앉힌 작가님은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다독였고, 나는 작가님 앞에서 또 울었다. 아주 울려고 만난 사이 같았다.


그 후 몇 번이나 그분 앞에서 눈물 흘렸는지 모르겠다. 책 만들며 글에 감정이입해 운 횟수까지 더하면 수십 번은 될 것 같다. 이상하게도 작가님 앞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고 느꼈나, 아니면 그의 위로가 글처럼 적확해서였나.


사실 대부분은 그가 아닌 나를 위한 눈물이었고, 그게 참 민망하다. 편집자가 이래도 되나. 저자를 보듬어야 하는 위치가 이렇게 보필받아도 되나. 편집자 자아와 이지은 자아 사이에서 자꾸만 휘청거렸지만, 이제는 부끄럽지 않았다. 힘들 때는 기꺼이 남에게 기대야 한다는 걸 작가님 원고를 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원고 추가 글은 <밥 먹고 다니라는 말>이었다. “우는 건 좋은데, 기운 빠지니까 밥 먹고 실컷 울었으면 좋겠다”는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작가님이 나를 향해 쓴 말이 아닌가 싶었다. 덕분에 힘든 시기에 실컷 울고 밥 많이 먹으며 책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눈물로 만든 책이다.




알라딘 구매 바로가기 

예스24 구매 바로가기 

교보문고 구매 바로가기 

인터파크 구매 바로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막연한 두려움 사이로 좋은 죽음을 상상해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