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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Jul 03. 2022

죽기 1년 전까지 ‘정진’을 외치던 이의 유고집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종종 사람들이 책을 보내준다. 집필하며 환희 씨 생각이 났다고, 책을 만들며 환희 씨가 그리웠다고, 이 책에 환희 씨 이야기가 들어간다고. 그런데 책을 만들며 환희 씨 곁에 있던 나를 생각했다는 연락은 처음 받아본 것 같다. 이문경 편집자는 이 책을 편집하면서 나를 자주 생각했다는 말로 끝맺는 장문의 편지를 책과 함께 보내주었는데, 편지만 먼저 보았는데도 왠지 읽기가 두려워져서 감히 열어보지 못했다. 다시 2020년 11월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그렇게 망설이다 오늘에야 집어든 책. 글은 차분하고 따뜻했다. 처음에는 ‘어떤 부분이 나를 떠올리게 했을까’를 상상하며 읽었는데, 나중에는 그냥 이분이 궁금해서 계속 읽었다.


예순에 이혼을 경험하고 더 늦기 전에 엄마가 원하는 삶을 걸어가라는 딸의 응원에 힘입어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결국 쓰는 인간으로 거듭난 사람.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20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예순둘 먹은 요양보호자로 수만 번의 밥을 지어 남을 먹이는 데 할애한 사람. 배려 없는 남편에게 시달리고 취업을 위해 따온 수많은 자격증을 무시당하고, 청각장애자임을 밝히며 다시 한 번 말해달라는 정당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거당했어도 이웃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던 사람. 누군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 고통을 쉽게 버려두지 못하는 사람. “누가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 몸이 아파도 뛰어”가던 사람. 기꺼이 비빌 언덕이 되어주던 사람. 그는 “빗나간 오지랖”이라 자책했을지 모르지만 그 덕에 살아나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쓰지 못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이분의 마음 안에는 드넓은 우주가 담겨 있었고, 이 책은 그 우주의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죽기 1년 전, 예순아홉에 적은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라고 외친 그가 어떤 글을 남기고 싶었을지 이젠 가닿을 수 없는 그 마음이 궁금하다.


#예순살나는또깨꽃이되어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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