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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r 24. 2021

뒤늦은 클럽하우스 단상

21.03.24.


언젠가 낯선 이와의 어색한 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막 던지다가 결국 관계를 틀어버린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이환희 씨는 말했다.


“자기 꼭 나 같네. 어색한 자리가 힘들 때는 그냥 말을 아끼는 편이 나아.”


클럽하우스에서 몇 번 마이크가 켜졌을 때 나는 이환희 씨의 그 조언을 떠올렸다. 평소에 발화가 많아 알게 모르게 실수를 저지르고, 말 한번 던진 다음에 뒤돌아서 ‘아까 그 말에 실수한 게 없었나?’라고 곱씹다가 기어이 이불을 발로 차대는 나 같은 소심한 사람에게는 클럽하우스 같은 음성 기반 SNS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마이크가 켜지는 대로 몇 번 말을 질러댄 다음에 ‘내가 아까 그 말을 왜 했지?’라고 자기비판하는 경험을 몇 번 겪었고, 그 이후로는 클럽하우스 자체를 잘 들어가지 않았다. 글은 단어를 고심하면서 쓸 수 있고, 다 정리될 때까지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는 게 되는데 말은 한번 입 밖으로 떠나면 주체가 되지 않는다. 대범하고 말 잘하는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에게 클럽하우스는 흑역사를 스스로 생산해내는 과정 같았다.

이후로는 클럽하우스 방문을 자제했고, 그사이 애플워치와 나이키 앱에 심취했다. 그러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클럽하우스에서 누가 어느 방을 개설했다더라, 누가 어느 방에 있다더라 등의 알림이 떠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어제 누군가의 방 개설 알림을 수차례 받았고, 저녁쯤 되어 ‘도대체 무슨 방인 것이냐’ 싶어 클릭했다가 나도 모르게 그 방에 입장하게 되었다. 그분밖에 안 계신 방이라 그런 건가, 그분과 팔로잉하는 사이여서 그런 건가. 방어할 새도 없이 나는 상단으로 끌어올려져 마이크가 켜졌고, 부득이하게 또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으며, 몇몇 사람이 들어와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 방 개설자로부터 “요즘에도 타바타 운동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순간 머릿속으로 나 혼자 타바타 운동한답시고 허우적거리던 순간이 떠올랐다. ‘세상에, 내가 아무 말이나 하다가 ‘타바타 운동 한다’는 말까지 내뱉어버린 것인가‘ 싶어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 기억 속에서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그 운동(그날 한 번 해봤다)이 타인에게 인상 깊이 각인되어 있다니.


오늘은 출판동네 후배들과 점심을 먹다가 ‘클럽하우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을 했더니 그 자리에 있던 친구 하나가 “저도 그 방에 있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란 나는 ‘내가 그날 타바타 말고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뒤늦게 들어가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 방에 있었지만 나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생각해서 참아준 게 아닐까. 아마 오늘밤에도 나는 이불을 마구 차대다가 잠이 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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