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4.
한 달에 한 번 강아지 산책 봉사를 간다. 대단한 봉사는 아니고, 그저 다섯 평쯤 되는 작은 공간에 있는 3~5마리 강아지의 밥을 챙겨주고, 대소변을 처리해주고, 간식 주고, 30분에서 한 시간쯤 공원에서 산책시켜주고 돌아오는 일이다.
당신 없는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주어진 시간들을 누워 있는 것으로 전부 허비하며 주말들을 날려버리던 언젠가 생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과거 언젠가 ‘생협에 어떤 봉사단체가 있으면 참여하겠냐’는 설문조사에 내가 ‘함께 동물보호소 가기’를 제안했는데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봉사단을 꾸리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제안자이니 당연히 합류할 거라 믿는 생협 활동가에게 차마 “제가 요즘 기운이 없어서요”라고 대답할 수 없었고, 또 주말마다 마냥 널브러져 있기보다는 그곳에 가서 강아지들 보며 몸 쓰고 시간을 쓰는 것도 좋겠다 싶어 “가입하겠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거기서 좋은 인연의 둘째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있었다(꿍이를 만나기 전이었다). 걔들도 주인을 잃었고, 나도 리아를 잃었으니까. 그렇게 생협 덕분에 비글구조네트워크라는 동물보호 단체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반 년째다.
봉사는 마음에 든다. 4개 조로 나뉘어 한 주씩 맡은 덕분에 한 달에 한 번만 가면 돼서 부담이 적고, 만나는 강아지들도 다들 착해서 댕댕이 초보자인 나 같은 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록 처음 제안한 보호소 봉사는 코로나 때문에 막혔지만, 거점병원에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임시숙소인 ‘센터’가 노동 강도도 훨씬 낫고 접근성도 좋아서 체력이 미미한 나로서는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함께 봉사하는 이들이 정말 ‘일반인’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4050 기혼 여성이고, 대학생 자녀를 둔 이도 계신다. 봉사 전 교육을 위해 4개 조가 한꺼번에 모인 적이 있다. 그분들은 내게 무차별적인 질문을 쏟아내었다. “어려 보이는데, 결혼한 거 맞죠?”, “아기는 있고?”, “남편이 여기 간다는데 뭐라고 안 해요?” 같은 것들. 차마 ‘얼마 전에 하늘나라에 갔다’는 말을 할 수 없던 나는 “예.. 뭐..”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왜 낯선 타인에게 집안사를 물어보면 안 되는지 반박하는 내 모습을 수십 번 상상했다. 왜 말 한마디 못했을까, 이 사람들과 계속 봉사를 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도 이어졌다. 그저 한숨만 푹푹 쉬며 집에 돌아갔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봉사를 계속했던 이유는 교육 때문에 모인 첫 날을 제외하고서는 계속 ‘혼자’ 봉사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만 참자’라는 생각으로 다음 봉사 날을 기다렸고, 그다음부터는 정말 그분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혼자인 덕분에 마음이 맞는 친구를 센터로 초대해 같이 산책 봉사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봉사 메이트가 있다. 혼자 산책 봉사를 하던 누군가가 실수로 개 목줄을 놓쳤고, 이후 반대편 도로변으로 뛰어가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단체에서는 1인 봉사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앞으로는 두 명씩 조를 짜서 순번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처음 내게 전화를 주었던 생협 활동가 분이 내게 누구와 조를 같이하고 싶은지 의사를 물었다. 순간 나는 다시 첫 날의 그 일을 반복하기가 무섭고 싫어서 그분에게 울먹이며 내 사연을 털어놓고 길고 긴 하소연을 했다. 그날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집안사를 묻는지 등등. 나의 상황을 십분 이해한 그분은 당신의 이야기는 나 혼자 알 테니, 앞으로는 나와 둘이 팀을 맺자고 다독여주었다. 봉사 그만두시지만 말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함께 팀을 이루게 된 활동가 쌤하고는 이제 꽤 친해져서 그분이 사춘기 딸과 겪는 내밀한 고민을 내게 털어놓으며 조언을 기대하기도 하고, 봉사 말미에 함께 믹스커피를 마시며 간식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헤어질 때는 “오늘 지은 씨 만나서 너무 좋았어요”라는 짤막하지만 다정한 카톡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분과 꽤 친밀한 사이가 된 지금 상황이 조금은 민망하다. 정치적 올바름에 예민하고 상대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묻지 않는 게 기본 예의라고 생각하는데다가 당신이 없다는 상황이 자격지심까지 만들어 날카로운 가시를 내보였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뭐라고, 내 불행이 뭐라고. 세상 모든 사람이 내 사연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 나이대 분들이 으레 던지는 소소한 질문들이었을 뿐인데 왜 그토록 민감하게 굴었을까. 심지어 활동가 쌤에게 내 불행을 다 들어주고 다독이는 역할까지 맡겨버리고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도 중요하고, 타인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큰 악의를 가진 게 아닌, 단순한 세대 차이로 인해 생기는 오해들까지 날카롭게 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분들이 내 세월을 알지 못하듯, 나도 그분들의 세계를 알지 못하니까, 단순한 질문 몇 개로 벽을 세우는 건 스스로 관계에 한계를 지어버리는 행위가 아닐까. 내가 첫날의 상황에 잔뜩 골이 나 봉사를 그만두었다면 이렇게 다정하고 멋진 분과 함께할 기회도 잃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