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5
친구가 왜 요즘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 근황을 수시로 들여다봐주는 이가 있었구나,
그리고 친구처럼 내가 글을 올리지 않는 동안
나를 걱정하고 잘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몇 명 정도는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 나는 잘 지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보다 잠이 많이 줄어서 새벽 기상을 하는 몸이 되었다는 점,
혼잣말이 굉장히 많이 늘었고,
잡생각이 많아져서 운전에 집중을 잘 못하고,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쏟을 때가 종종 있어서
식탁이든, 자동차 운전석이든, 회사 책상이든
늘 손길 닿는 곳에 손수건을 구비해놓은 정도일까.
나머지는 당신이 있던 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에 들어갈 때는 “이환희 씨, 나 왔어!”라고 소리치며 현관문을 열고
당신이 앞에 있는 것마냥 매일 소박하게 밥을 차려 먹고,
영정 사진 앞에 앉아 오늘 있었던 즐거운 일, 힘들었던 일, 황당했던 일을 조잘거리고,
날이 좋거나 벚꽃이 예쁘거나 기쁜 소식이 생기면
당신을 바라보며 “조금만 더 살다 가지”라고 원망하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당신의 생이 너무 짧았다고 아쉬워할 때마다
당신 옆옆 자리에 놓인 작은 납골함을 생각하게 된다.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한날인 여자 아이.
이름 앞에 “예쁜 딸”이라 적혀 있는 그 비석 앞에
부모는 매일같이 찾아와 울다가 간다고 했다.
열 달을 품었다가 나오자마자 아이를 잃은 엄마와,
엄마와 눈 마주치자마자 왔던 세상으로 돌아간 그 아이를 생각하면
우리의 아쉬움은 사치 같다.
우리는 적어도 눈맞춤은 했으니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원 없이 사랑했으니까.
글을 쓸 때는 나 외의 모든 이의 감정을 하찮게 여겼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불행 앞에 눈이 감겨 우리가 함께했던 찬란한 행복을 잊고 살았다.
지금은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잘 맞는 짝이었는지 안다.
100년을 같이 살아도 우리의 6년보다 못한 사랑을 하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지도 안다.
그러니 이제는 그 기억에 집중하며 내게 주어진 삶의 몫을 채우려 한다.
이제는 스스로를 연민하는 감정에서 벗어나,
조금은 객관적으로 우리를 돌아보는 내가 되었다.
당신이 좋아하던 윤종신의 <나이> 가사처럼
“그 이별이 왜 그랬는지 아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우리는 왜 이별했을까. 이별해야만 했을까
요즘에는 주로 이 문장을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우리가 영영 이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만날 날까지 내 몫의 그리움을 감당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