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이야기 하나쯤은 품고 산다. 어떤 말은 기어코 그 사람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말은 결코 음성화되지 못하고 그 사람 안에서 맴돌다가 화병으로 남는다. 내 마음속 이야기는 어느 쪽으로 향했을까.
또래 IMF 키드들과 마찬가지로 내 10대, 20대 시절도 가난했다. 가난의 정도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당시에는 그게 그토록 서러웠다.
수능 끝나고 얻은 첫 아르바이트에서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일해 180만 원을 벌었다.그 돈은 고스란히 아빠에게 넘어갔는데, 내 등록금의 일부로 충당되었을 텐데도 별안간 강도를 당한 기분이었다. 익월에 받은 미지급금 12만 원이 너무 소중해서, 아빠가 알면 또 내놓으라고 할까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통장에만 고이 간직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 처음으로 내 속 이야기를 글로 썼다. 알바비 12만 원처럼, 남들에게 들킬까 싶어 겁나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자꾸 마음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꺼내 보일 곳이 없어서, 그저 누구도 보지 못하도록 내 자취방 안에 숨어들어 두꺼운 공책 사이에 일기 같은 글들을 끼적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날것에 가까운,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미움이 가득한 글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사귀던 애인이 대학 수업을 간 나를 방에서 기다리다가 그 일기를 훔쳐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몰래 보고 덮지 않고 내 일기장에 댓글처럼 감상평을 적어놓았다.
삶에서 힘든 일은 그저 거쳐가는 것일 뿐이니 너무 아프지 말고 힘내라는 식의 글이었는데, 그딴에는 어줍잖은 위로를 건넨 것이었겠지만 그 활자들을 마주한 순간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다음에는 자취방 안에 깃든 공책조차 내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이어졌다.
당시에 애인은 나를 자신의 일부처럼 생각했고, 그의 그런 믿음이 가난한 내게는 어느 정도 유용했기에 나는 그 당혹과 분노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일기 쓰기를 그만두었을 뿐이다.
나도 내 삶을 성실히 기록했다면 그 이야기들은 나를 어디로 이끌었을까. 글쓰기가 내 안에 어떤 것들을 남겼을까.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읽으며 또 누가 볼까 두려워 찢어버렸던 내 일기들이 문득 떠올랐다. 책에서 홍승은 작가는 글쓰기란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말을 토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글쓰기를 빼앗긴 나는 그 뜨거운 감정들을 입안에 문 채로 삼키지도 못하고 뱉어내지도 못한 채 뜨거운 입김만 후후 불며 허둥댔던 것 같다.
이제라도 타인의 침범에 움츠려들지 않고, 내 안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고스란히 글로 옮길 수 있을까. 글쓰기가 이끄는 방향으로 기꺼이 나아가보고 싶다. 그 과정으로 승은 작가가 경험했다는 “나에게 위로받는 순간”을 기꺼이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