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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Jan 16. 2022

새해, 새 숫자로 시작하는 이유

2022,01,16,

올해는 이사 계획이 있다. 당신을 살려보려 급히 이사왔던 이 집의 전세 만기가 6개월 남았다. 전세 연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살릴 당신이 없는데 내가 이 집에 거주할 이유가 없으니까, 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왜 하필 지금 이사를 준비하냐고, 요즘 대출이 얼마나 꽉 막혔는지 아냐는 주변 지인들의 성화에 겁이 덜컥 나서 얼른 은행에 들렸다. 은행원이 필요한 자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물었다. 


“결혼은 하셨나요?”


뭐라고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사별했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동공이 흔들리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상대방은 “아, 1가구 2주택 때문에 여쭈어보아야 해서요, 혹시 배우자에게 다른 집이 있으면 어쩌고저쩌고” 한참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 이유로 물은 줄 알았다면 그냥 혼자 산다고 할 것을.


작년 가계부를 정산했는데 붕 떠 있는 돈이 많더라. 어디로 가지 못하고 그냥 통장에 쌓여 있는 돈들. 당신을 잃은 대가로 받은 돈 때문에 수입이 늘었고 사람이 반으로 줄었으니 지출은 줄은 탓이다. 새 패턴에 맞추어 가계생활을 계획했어야 하는데, 만사가 귀찮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혼자 계획은 무슨’ 싶어서, ‘뭘 얼마나 모으겠다고’ 싶어서 그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나 돈이 되게 많다?” 했다. 엄마가 ‘그러면 너 올해 이사해도 형편 어려운 A에게 당장 돈을 돌려받지는 않아도 되겠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1천만 원 정도야 융통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황당한 말투의 엄마 목소리. “너 A한테 1천만 원만 갔다고 생각해?” 내가 그한테 2천만 원을 빌려줬단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네 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 어쩌니. 어디 종이에라도 좀 적어놔”라고 했다. 그러게. 그거 나한테 꽤 큰돈인데. 대출 알아보러 다니는 주제에 제 돈이 어디 갔는지도 모르고 사는구먼.


본래 나는 굉장히 계획적인 타입이다. 뭐 하나를 선택할 때도 세 번 네 번 돌아가며 들여다보고, 시뮬레이션한다. 물건 하나를 들일 때도 ‘이걸 꼭 사야 하나?’, ‘대체품이 있지 않을까?’, ‘그저 가지고 싶기 때문에 사려는 게 아닐까?’ 등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러다 보니 선택이 많이 늦고,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근데 어쩌다 이런 무계획자가 되었나. 



전에는 새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작년에 성실하게 살았다면 올해도 성실하고, 내년에도 성실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새해가 온다 해서 불성실한 사람이 갑자기 성실해질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새해는 작년의 나태하고 느슨했던 나에게 주는 새로운 기회가 아닐까. 계획도 잘 세우지 못하고 대충대충 살던 작년을 정리하고 올해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라고 새로운 숫자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올해는 이사도 하고 자금계획도 좀 꼼꼼하게 세우고 그렇게 살아봐야지.. 


요 며칠 새로운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붕붕 떠다닌다. 아직은 설익은 생각인지라 쉽게 결단 내리기 어렵지만 내 속을 잘 들여다보고 적절한 판단을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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