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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Jan 26. 2022

그럼에도 책을 만드는 이유

편집자로 산다는 것


- “편집자 하지 마세요” 

예비 출판인 시절, 신촌에 있는 출판 관련 아카데미를 수강 신청했다. 책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득 품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로 가득한 공간. 강의 첫 시간에 한 출판인 강사는 이 말부터 꺼냈다. 


“편집자 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의아했다. 아직 첫발을 떼기도 전인 후배들에게 저런 말을 내뱉는 의도는 무엇인가. ‘내 자리 빼앗지 말라’는 밥그릇 싸움의 일종일까. 그 말 덕분인지 아니면 업계 현실을 미리 파악했는지, 수업이 하루 이틀 쌓여가면서 “저는 그냥 독자로 남을래요”라고 말하며 청강을 중단하는 학생들이 생겼다. 반면 내 경우에는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보다 ‘해야겠다’는 결심이 더 큰 상태라 그의 조언을 귀에 담지 않았다. 그럼에도 종종 불안과 좌절로 가득해 ‘난 편집자 그릇이 아닌가 봐’ 중얼거리던 신입의 나는 종종 그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은 안다. 그는 이른바 ‘사양 산업’에 종사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위해 이런 말을 내뱉은 것이다.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다’고 눈이 반짝이는 이들에게 이렇다 할 청사진을 제시해줄 수 없기에 한 말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중에 들을지 모를 ‘왜 그때 말리지 않았느냐’는 원망을 사전에 차단하려던 자기 방어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이 문장은 신입 시절 내게 선배들이 “지금이라도 다른 일 찾아 봐. 넌 젊잖아”라는 말과 함께 해준 충고이고, 그 선배 또한 과거에 다른 선배에게서 귀동냥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표현이다. 왜 이런 넋두리를 구전하는가. 새로 유입되는 이들에게 전해줄 조언이 고작 이런 자조 섞인 말밖에 없는 것일까. 


출판인들이 자꾸만 이 말을 되뇌는 이유는 명백하다. 정말로 출판 산업이 하향세이기 때문이다. 12월에는 송년회를 즐기느라, 1월에는 신년회를 준비하느라 책이 안 팔리고, 2월에는 달이 짧아 안 팔리고, 3월에는 새 학기라 안 팔린다. 봄에는 벚꽃 구경 가느라, 여름에는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느라, 가을에는 단풍 보러 산에 가느라, 겨울에는 집에 틀어박혀 귤 까먹으며 넷플릭스 보느라 책을 안 읽는단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 읽기에 할애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8분이라고 한다(2019년 통계청 기준). 양치에만 하루 세 번씩 9분을 할애하는데, 이마저도 못한 수준인 것이다. 독서인구가 해마다 줄어드니 초판 제작부수도 함께 쪼그라들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초판 제작부수가 3,000부 내외였는데, 요즘에는 2,000부, 심지어 1,500부를 기본 부수로 할애하는 출판사가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아무래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사실임이 증명되었으니, 지금이라도 발을 빼고 얼른 다른 업계로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마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많은 일을 대체하는 근 미래에 어떤 직업도 ‘호시절’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너도 나도 직업명 끝에 ‘사(士)’ 자를 달고 싶어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변호사나 판사, 회계사까지 조만간 사라질 고위험 직종으로 분류된다. 


여기도 힘들고 저기도 어렵다면, 정답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책 만드는 일을 처음 선택했을 때의 마음, 선배들이 “편집자 하지 마세요”라고 벽을 쳐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그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우리는 왜 이 사양 산업에 굳이 뛰어들어 지금도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는가. 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 그럼에도 계속 책을 만드는 이유 

경력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신입 편집자들이 작성한 이력서들을 접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대부분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고, 책이 좋아 책을 만드는 일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는 류의 책을 향한 애정을 담은 이야기와 출판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하다. 일정 부분 사실일 것이다. 책에 관심과 애정도 없으면서 출판계를 직업의 장으로 상상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책을 좋아한다’는 출판계에서 일하는 ‘기본 조건’일 뿐이다. 이는 독자의 입에서 나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당연한 말’인 것이다. 더불어 업에 대한 지나친 경외심은 일하는 나를 지켜주지 못할 확률이 높다. 신입 딱지를 붙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판계에 들어온 이는 보통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어떻게 ○○○ 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사장이, 업계가, 저자가 이럴 수 있지?” 배신감에 부르르 떨며 업계를 떠나는 이도 종종 만난다. 반대로 회사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애들은 지구력이 부족해. 고심해서 뽑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한눈 팔아버린다니까.” 안타깝다. 지원자와 업계 현실의 부조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수많은 원인이 산적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의 출판을 경외시하는 자세’의 문제라고 본다. 


흔히 출판을 일종의 ‘문화 산업’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합성어로, 국립국어원의 정의에 따르면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공유·전달되는 생활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그 과정에서 이루어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일컫는 ‘문화’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업”인 ‘산업’이 만난 행위다. 신입 시절에는 전자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져서, 후자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문화를 다루기도 하지만, 문화가 담긴 책을 ‘팔아야’ 하는 직업이다. 심하게 말하면, 읽히지 않으면 책이 아니라 종이일 뿐이다. 


종종 ‘문화 산업’이라는 말로 출판의 정체성을 거창하게 포장하는 일부 출판사 사장들도 만난다. 이 말은 스스로의 일에 자긍심을 가지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쥐꼬리만 한 월급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내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공부하면서 돈도 버니 얼마나 좋아?” 이 말은 신입 시절 전 직장 사장에게서 직접 들은 표현이다. 편집자 스스로가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면 몰라도, 월급을 주는 사장이 신입에게 건네기에는 부적절하다. 게다가 그는 40여 년 넘은 출판사를 운영하며 출판 관련 협회 이사진에 늘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이처럼 출판을, 책을 경외시하는 사장과 신입 편집자가 만난다면? 십중팔구 야근과 특근으로 점철된 최악의 노동환경과 최저임금에 준하는 월급을 주고받을 확률이 높다. 참고로 그는 “편집자가 무슨 노동자냐”라며 노동절을 휴일로 지정하지 않았다. 그럼 편집자가 노동자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학교 다니는 학생이 노동절에 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봤던 것일까. 


나는 ‘문화’라는 단어의 거창함을 믿지 않는다. 열악한 노동환경, 출판노동자의 90퍼센트가 여성임에도 대부분의 상사는 남성이 꿰차고 있는 업계 현실, 10여 년째 도통 오르지 않는(오히려 떨어진) 외주비, ‘경험 많은 신입’만 바라고 가능성 많은 신입을 뽑아 훈련시키는 투자는 꺼리는 업계 관행까지, ‘문화’라는 말 뒤에 숨어 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를 계속 일하게 하는 이유는 그 문화 안에 없다. 


-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계속 출판계에서 일하게 하는가.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중얼거리는 사양산업에다가 열악한 노동환경을 앞두고도 굳이 ‘책밥’을 먹겠다며 오늘도 합정으로, 강남으로, 파주 출판단지로 출퇴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경우에는 직업적 소명의식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덕이 컸다. 아무리 책이 안 팔리고 대한민국 국민이 하루 책을 8분밖에 읽지 않는다고 해도, 서로를 믿으며 한 권 한 권 쌓아나가는 편집자가, 디자이너가, 마케터가, 제작자가, 저자가 있다. 우리는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버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위해 성심껏 일하고 회사로부터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것이다. 서로를 믿으며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는 과정이 즐겁고, 이것이 책이라는 물성으로 탄생하는 결과가 마음에 든다. 종종 각자의 위치와 상황 때문에 언성을 높이며 자기주장을 할 때도 왕왕 생기지만 책이 출간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의기투합한다. 이 느슨한 연대가 ‘그럼에도 책을 만드는 이유’다. 


모 그림 작가와 함께 책을 만들 때 이야기다. 회사에서 요구한 출간 일정은 하루 이틀 다가오는데, 작업 속도는 한없이 더뎠다. 자꾸만 그에게 안부를 빙자한 원고 독촉 전화를 걸었다. 그 통화에서 원고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휴대전화에 내 전화번호만 떠도 상대는 곧바로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 작가는 담당 편집자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무리해서 일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허리가 좋지 않던 그는, 그림 작업이 끝나갈 즈음 디스크 문제로 병원을 수차례 오갔다. 결국 책은 일정에 맞게 잘 출간되었으나, 내 입장 때문에 그분을 궁지에 몰았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떠나지 않았다. 왜 나는 사람을 보지 않고 책만 보았는가. 지금 생각해도 그에게 미안하다. 


지금은 웬만하면 상대에게 독촉하지 않는다. 책이 제때 나오는 것보다 동료와 나의 안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정 등으로 힘들어하는 상대를 보면 반드시 이렇게 말해준다. 


“일정 조정 필요하면 말씀해주세요. 우리 가능한 만큼만 해요.” 


상대를 몰아붙이지 말자.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속담처럼,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마감은 오고 책은 나온다. 게다가 편집자와 함께 일하는 이들은 웬만하면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물론 잠수 타버리는 저자도 종종 존재한다지만, 그마저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지. 어른다운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나도 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가끔 있으니까. 



- 읽는 인간을 발견하기 위하여 

다른 업계와 달리 출판이 ‘문화 산업’으로 불리는 이유는 일부 사장들의 편의대로 노동력을 싼값에 쓰기 위함이 아니다. 책끼리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 냉장고의 판매율과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면 엘지 냉장고 관계자는 긴장하겠지만, A 출판사의 책이 잘나가면 B 출판사는 부러워할지언정 긴장까지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A 출판사 책이 잘나감으로써 B 출판사 책도 판매될 여지가 생긴다. 한 권의 책이 곧 다른 책을 부르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읽고 감응한 사람은 분명 또 다른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2021, 북하우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의 또 다른 책 『명랑한 운둔자』(2021, 바다출판사)를 찾아 읽고, 나아가 그의 친구인 게일 콜드웰이 냅의 죽음을 맞이하며 쓴 에세이 『먼 길로 돌아갈까?』(2021, 문학동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마련이다. 이렇기 때문에 출판의 파이는 책의 발견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커져야 한다. 출판계에서 공공도서관 증진을 추진하는 이유다. 


하루에 8분만 책을 읽는 사람이라 해도, 한 문장에 감응했다면 그는 분명 ‘읽는 인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 때문에 출판계에서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한다. 책값을 후려치는 경쟁으로 나아간다면 책의 다양성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출판과 경쟁은 어울릴 수 없는 단어다. 


아무리 출판계가 사양 산업이고 출판계에 위기가 닥쳤다고 외쳐도, 그 안에서도 책을 만드는 사람은 계속 존재해왔다. 내게 “단군 이래 최대 위기”를 운운한 선배도, 그 선배의 선배도 결국에는 책밥으로 먹고살았다. 인공지능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또 다른 콘텐츠의 바다로 많은 이들이 전향한다고 해서 과연 책이 사라질까? 그런 일은 요원하다고 본다. 인간에게 호기심과 배움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책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편집자의 일 또한 계속될 것이다. 책의 형태와 업의 내용은 바뀔 수 있다. 과거에는 교정교열과 원고수급이 편집자의 제1 목표였다면, 지금은 기획력이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된다. 그렇다 해도 편집자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콘텐츠에 담긴 문화를 잘 포장해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 동료들과 하나의 결과물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 그리고 독자에게 발견되는 것. 이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계속 책밥을 지어 먹을 것이다.  



*해당 글은 <출판N>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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