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SNS에 내 책 제목을 검색해본다.
책 리뷰는 모두 찾아 읽어보려 하고,
읽어주어 고맙다는 표현으로 ‘좋아요’를 살포시 눌러놓는다.
낯부끄러워 댓글까지는 달지 못하지만.
신입 시절에 겪은 부당한 일들을 많이 적어놓아서인지
리뷰들에서 종종 ‘이분 고생 너무 많으셨다’는 글들을 발견한다.
사실 내가 겪은 신입 시절의 고난과 분투가
나에게만 특별히 가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요령이 없어서 좀더 유하게 대처하지 못했을 뿐.
또 '역시 이 업계는 답이 없다' 류의 반응을 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말하는 이들을 경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류의 리뷰를 볼 때 가장 마음이 쓰리다.
'답이 없다'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성폭력 생존자가 성폭력의 경험을 폭로하고
세월호 희생자 부모가 자기 자식들의 현장을 직접 드러내며
진상규명을 목놓아 외치는 이유는
더는 자신이 겪은 경험과, 그 경험으로 인한 수많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 생각한다.
속에 담긴 상처들을 억지로 끄집어내고 상대를 단죄한다 해서
겪었던 일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다.
최근 점심에 회사 근처를 산책하다가 전 직장 사장을 만났다.
그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순간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산이 없던 나는 졸지에 그의 우산을 나누어 쓰고 함께 15분 정도를 걷게 되었다.
대화 말미에 사장은 내게 웃으며 "다시 돌아오라"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웃으며 "저는 매출에 도움이 안 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그날 밤, 나는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쳤다.
내게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들이 상처로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글을 쓰며 어느 정도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만 분명해졌다.
한 리뷰에서는 어떤 낯모르는 독자 한 분이
이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며 나를 궁금해하는 글을 보았다.
그분께 소식을 전한다면, 음. 한마디로 나는 잘 살고 있다.
따뜻한 동료들 사이에서 인격적으로 대우받는다고 느끼며 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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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의 암, 반려인의 암, 나의 교통사고가 연달아 일어났을 때 회사 사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사장님은 내게 돈 봉투를 쥐어주시며
‘이건 개인 돈이다, 남편만을 위해 쓰지 말고 너를 위해서도 써라,
꼭 둘이 반반씩 나누어 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회사의 배려로 1년 이상 근무자에게 주어지는
무이자 긴급 생활자금 대출까지 지원받은 상태였다.
입사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었는데 회사는 나를 '내 직원'이라 생각해준다고 느꼈다.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에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하던 내게 사장님은
‘우리가 함께 겪어 나가는 것’이라 말씀해주셨다.
그 자리에서 ‘이분 품은 왜 이토록 넓은가’ 싶어 쉽게 울어버렸고,
그분은 내가 한동안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사장실 밖을 걸어 나오면서 나는, 내가 이 위기만 겪어내면
이후 이 회사를 얼마나 열심히 다닐지 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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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으며 깨달았다.
회사가 직원을 잡고 싶다면,
말 그대로 오래 다니며 충성하는 직원을 들이고 싶다면
그저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된다는 사실을.
내가 회사에 바라던 점은 그거 하나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산책길에 전 회사 사장을 만나 '돌아오라'는 권유를 듣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줄 것 같다.
'저는 아마 지금 이 회사를 꽤 오래 다닐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