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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y 03. 2022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에게

22.05.03.

Q. 어머니와 이별의 인사도 하지 못하고 보냈습니다. 이 슬픔을 어떻게 건너야 하나요? 



A: 좋은 이별은 정말 쉽지 않죠. 저는 아버지를 달리던 구급차에서 떠나보냈고, 그로부터 3년 뒤에 10년을 동거동락했던 반려 고양이와, 1년간 친구로, 1년간 애인으로, 5년간 반려자로 함께 산 남편을 같은 해에 암으로 동시에 떠나보냈습니다. 2017년에 아빠를, 2020년 9월에 고양이를, 그해 11월에 남편을 보냈어요. 저 또한 여전히 이별하는 중입니다.


연이은 이별에 진정되지 않다 보니 주변의 '힘내' 한마디에 '여기서 어떻게 더 힘을 내냐'며 벌컥벌컥 화를 내거나 끝없는 무기력과 우울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 어떤 좋다는 책도, 다정한 말도 귀에 담기지 않았고 세상에서 제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었어요. 그럼에도 그 순간 저를 위로해주던 몇 가지를 공유 드려요. 제가 겪은 가장 최근 이별이면서 제일 큰 아픔이던 남편 일을 중심으로 말씀 드릴게요. 


1. 개인의 아픔을 그 누구도 똑같이 감응할 수 없지만, 같은 경험을 안고 사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더라고요. 사별자 모임에 나가보세요. 인터넷 카페든 호스피스든 찾아보시면 분명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의 모임이 있을 거예요. 먼저 경험한 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사연을 공유하다 보면 ‘나만 슬픈 게 아니구나’라는 묘한 위로를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2. 저 같은 경우에는 처음엔 이 모든 게 거짓말 같더라고요. 근데 이 생각에 함몰되다 보면 나중에는 사랑하던 사람이 내 곁에 있던 순간들까지 전부 거짓말처럼 느껴져요. 그 친구는 이제 없는데, 나중에는 함께했던 기억이 전부 사라지는 게 아닌가 무서워서 밤마다 글을 남겨 SNS에 올렸어요. 그냥 매일 생각나는 대로 썼습니다. 그 친구와의 추억을 남기기도 하고, 이별하는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을 적기도 하고, 병간호하던 과정에서 남편의 원가족과 싸운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요. 마음속에 있는 슬픔과 분노, 그리움, 회한 같은 것들을 풀어냈던 것 같아요. 남편을 떠나보내고 딱 100일간 매일 썼습니다. 저는 SNS에 글을 남기며 많은 익명의 사람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받으며 애도의 시간을 건넜는데요, 글을 다수에게 오픈할 필요까진 없는 것 같아요. 쓰는 것만으로도 해소되는 게 있더라고요. 


3. 평소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소망 같은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들어주세요. 예컨대 ‘한라산에 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평소 말씀이 있었다면 어머니의 사진이나 유품과 함께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시는 거죠. 제 남편에게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전 글을 제 글과 함께 모아 남편 1주기에 맞추어 공저로 출간했는데요, 그의 이름 앞에 ‘작가’라는 이름이 붙는 걸 보니 심하게 말하면 ‘생의 과업을 다 이루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4. 삶의 루틴을 만들고 스스로를 다잡는 시간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갑자기 떠나는 누군가를 마주하면 ‘이렇게 살면 뭐하나’ 하는 생각에 무기력해지는데 이때 루틴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하시던 일을 멈추지 말고 계속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브로콜리너마저의 <바른생활>이라는 노래에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자”라는 가사가 있어요. 전 이걸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어요. 


5. 필요하다면 정신의학과의 도움을 받아보시기를 추천드려요. 테라피스트도 좋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삶에 큰 충격을 받았으니 뒤늦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올 수도 있다는 주변 성화에 떠밀려 정신의학과에 가보았는데요, 약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전문의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는 과정만으로도 풀리는 게 있었어요. 가족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낸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되었고, 사별 이후 불면증과 불안 등을 겪던 저희 엄마에게도 권했는데 엄마도 좋으셨는지 동생까지 데려가시더라고요. 


6. 마지막으로 그분이 가장 사랑했던 존재인 당신을 많이 아껴주세요. 저는 힘들고 무기력하고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속으로 ‘내 이런 모습을 본다면 당신이 얼마나 힘들어할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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